2002년 1월 히로뽕 투약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 받은 김모(33)씨는 출소 후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야채 행상을 하며 성실히 살고 있었다. 중독성 때문에 재범 위험이 있는 게 마약사범이지만 김씨는 4년 동안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히로뽕을 멀리 했다. 사실상 재활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2006년 6월 마약 투약 시절 알고 지내던 임모씨가 김씨에게 연락을 하더니 “히로뽕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이미 끊었다”며 거절했다.
임씨는 그러나 김씨를 옭아매려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임씨는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모씨를 돕기 위해, 이씨 처를 통해 소개 받은 경찰관과 함께 계략을 꾸몄다. 김씨가 마약을 투약하게 만들어 검거하게 한 뒤 그 공적을 수감 중인 이씨에게 돌려 형을 줄이려는 게 임씨의 의도였다.
경찰도 김씨를 검거할 경우 실적을 올리게 되는 만큼 임씨와의 협력을 주저하지 않았다. 임씨는 마약 전과자 중 가장 연락이 잘 되는 김씨를 목표로 삼아 1주일 동안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히로뽕 구입을 강권했다. 할 수 없이 김씨는 임씨의 불순한 의도는 눈치채지 못한 채 히로뽕을 샀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돈이 없다’고 하자 임씨는 경찰관으로부터 ‘공작금’ 50만원을 받아 “이 돈으로 마약을 사라”며 건네줬고, “휴대폰 요금이 없다”고 하자 대신 요금을 내주기도 했다. 심지어 경찰관은 ‘여자가 있으면 유인하기 훨씬 쉽다’며 여자까지 동원해 김씨를 여관으로 유인했다. 결국 김씨는 임씨가 준 돈 중 20만원으로 히로뽕 0.24g을 사서 여관에 투숙한 뒤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범죄의사를 갖지 않은 사람에 대해 수사기관이 범행을 적극 권유해 범죄를 하도록 한 뒤 바로 그 범죄를 문제 삼아 기소한 것은 절차상 법률에 위반해 무효”라며 김씨의 공소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수사기관과 정보원이 계략을 짜 검거한 행위 자체가 위법한 함정 수사라는 것이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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