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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설적인 스파이 '전설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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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설적인 스파이 '전설속으로'

입력
2007.10.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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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전설적인 스파이로 옛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전직 국가보안위(KGB) 요원 알렉산데르 페클리소프가 파란만장한 ‘음지의 삶’을 접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대변인은 페클리소프가 26일 93세의 천수를 누리고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대신 베일에 싸인 그의 평생에 걸맞게 정확한 사인이나 사망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대변인은 “페클리소프가 전기공학, 방사능, 제트기 기술 등을 포함한 비밀 과학 기술 정보를 획득하는 극도로 어려운 임무를 성공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1941년 뉴욕의 옛 소련 총영사관에 부임한 페클리소프는 유대인 출신 전기기사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그의 부인 에셀을 포섭해 미국의 원폭개발 <맨해튼 프로젝트> 와 관련된 비밀 정보를 입수했다. 페클리소프가 빼돌린 정보를 바탕으로 소련은 1949년 8월 마침내 원폭 실험에 성공, 미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미국이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사막에서 죽음의 버섯 구름을 피운 뒤 세계 2차대전을 종전시키는 등 가공할 위력을 발휘해온 ‘핵 독점’ 시대가 불과 4년 만에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페클리소프는 뉴욕 총영사관의 외교관 신분으로 암약하면서 사회주의자인 로젠버그 부부와 접촉해 핵무기 개발과 관계되는 다량의 군사기술 비밀을 취득했다.

이어 페클리소프는 일시 귀국했다가 47년 산업 스파이 부책임자로서 KGB 런던 지부에 파견됐다. 여기서 그는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 근무하면서 <맨해튼 프로젝트> 에 참여했던 독일 출신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를 통해 미국과 영국의 원폭 기밀을 얻어 냈다.

런던에서 페클리소프가 푹스와 공모해 입수한 정보는 소련이 불과 18개월이라는 단기간 내에 원자폭탄을 제조하도록 하는 밑거름이 됐다. 푹스는 영국 당국에 검거돼 14년의 중형을 언도받고 복역했다.

페클리소프에 포섭된 로젠버그 부부는 1950년대 미국 정계와 재계, 문화예술계에 ‘매카시 선풍’이 몰아치는 와중에 반역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직접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바로 사형에 처해져 지금까지 논란을 빚고 있다.

로젠버그가 전기의자에서 처형된 지 40주년을 맞은 93년, 사건은 미국 변호사협회의 모의법정에서 재심됐으나 무죄가 선고됐다.

페클리소프도 97년 워싱턴 포스트와 회견을 통해 로젠버그와 50차례 만났으나 산업정보를 제공했지 원폭 기밀을 넘기지 않았으며 부인의 경우 스파이 행위와는 무관하다고 증언했으나 진실 여부는 미확인인 상태로 역사에 묻혀지게 됐다.

그는 60년 KGB의 워싱턴 지국장으로 부임한지 2년 뒤 62년 미국과 소련이 전쟁 직전까지 갔던 쿠바 위기가 발발하자 양국의 막후 중재자로 나서 결국 전면 충돌을 막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 KGB의 스파이 양성학교에서 후진을 키우는데 전념했던 페클리소프는 74년 은퇴했으며 소련 붕괴 후인 지난 96년에는 정부에 의해 그간의 공로로 ‘러시아의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페클리소프는 만년에 회고록 <로젠버그 부부 배후의 사나이> 와 언론 인터뷰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17명의 외국인 협력자를 포섭해 부렸다고 자랑했을 만큼 금세기 최고의 스파이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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