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증권에 날개를 달아줬지만 보험엔 족쇄를 채워 놓았다.”
보험업에 대한 규제장벽은 높고 두껍다. 인수ㆍ합병(M&A)을 하려 해도, 해외 진출을 하려 해도, 또 신상품을 내놓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려 해도 그 규제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그 사이 방카슈랑스 시행으로 은행에 안방까지 내줘야 할 판에 내몰렸고,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따라 증권업에 턱 밑까지 쫓기는 신세가 됐다. 보험업계가 불만과 피해 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초안 단계이지만, 정부가 구상하는 보험업법 개편방향은 꽤나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보험사 인수시 주요 출자자 요건을 완화해 M&A 장벽을 해소하고, 보험사가 소유할 수 있는 자회사 범위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또 투자자문업, 투자일임업 등 보험사가 취급할 수 있는 업무 영역도 크게 늘려줄 것으로 보인다.
이 자체로도 과거와 비교하면 큰 변화임에 틀림 없지만, 보험사의 눈높이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보다 과감한 다각도의 규제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는 우선 보험지주회사 설립장벽을 해소해 줄 것을 요구한다. 업무의 다각화, 복합상품 개발, 정보 공유 등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위해서는 지주회사 체계가 절실한 상황.
물론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상 보험지주회사 설립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개별 조항 하나 하나가 은행 위주 금융회사에 초점이 맞춰져 사실상 차단돼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삼성생명(삼성) 대한생명(한화) 등 산업자본의 지배를 받거나, 교보생명처럼 비금융자회사(교보문고)를 보유한 경우 보험지주회사 설립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생명보험협회 박대철 팀장은 “보험업법에 별도의 보험지주회사 설립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막혔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카슈랑스 역시 보험업계가 결코 양보하기 힘든 현안이다. 내년 4월 마지막 4단계 방카슈랑스가 시행이 되면, 종신보험 등 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 등 생ㆍ손보업계의 핵심 상품이 은행 창구에서 팔리게 된다.
보험업계는 방카슈랑스 시행으로 불완전 판매 등 부작용이 늘고 있다며 “4단계 시행 계획 폐지”를 외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으로 치면 예ㆍ적금을 보험사에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열쇠를 쥐고 있는 금융당국은 “예정대로 시행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대통합민주신당 신학용 의원 등은 4단계 방카슈랑스 시행을 전면 백지화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실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은행의 높은 협상력이 보험회사 영업수지 및 손해율 악화의 원인이 되고 이는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보험 소비자가 손실을 부담할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예금보험료 역시 업종간 형평에 맞지 않는다. 현재 은행은 0.1%, 증권은 0.2%의 예금보험료를 내지만, 보험업 0.3%를 낸다.
이러다 보니 삼성생명이 납부하는 예금보험료가 자산 규모가 두 배에 달하는 국민은행보다 더 많은 기형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예금보험료는 도산위험에 근거해 차등부과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런 ABC조차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998년 예금보험공사가 출범하기 전 권역별 예보기구에서 책정했던 보험요율이 아직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탓이다.
물론 원한다고 모든 것을 풀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낡고 불공정한 것이라면 과감히 풀어야 한다. 더구나 금융의 칸막이가 사라져 업종간 통합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타 업종에 비해 보험만 무거운 규제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금융당국 출신의 한 업계 고위인사는 “은행 증권 보험 등 핵심금융업종을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끌고 갈 지에 대한 정부의 종합 청사진이 없다”며 “그러다 보니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식의 정책으로 업종간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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