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경주 불국사 내 석가탑 해체 현장. 탑의 사리공(사리 안치를 위해 탑신에 뚫은 구멍)에서 각종 사리장치 유물들과 함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됐다. 석가탑은 그동안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초 지어진 후 한 차례도 수리되지 않은 채 보존돼온 것으로 믿어져 왔다.
하지만 석가탑에서 함께 출토된 종이뭉치(묵서지편)가 석가탑을 두 차례 해체ㆍ복원한 기록을 담은 중수기임이 2005년 밝혀지면서 석가탑 출토 유물 모두가 신라 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정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 무구정경의 제작연대뿐 아니라 불국사와 석가탑의 창건 연대, 석가탑 중수 원인 등을 밝혀줄 묵서지편의 내용은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됐다.
무구정경 신라 제작설의 기타 근거들
서울대 노명호 국사학과 교수와 이승재 언어학과 교수의 판독 결과에 따르면, 묵서지편은 ①현종 15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顯宗 15年 佛國寺无垢淨光塔重修記) ②현종 15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형지기(顯宗 15年 佛國寺无垢淨光塔重修形止記) ③정종 4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靖宗 4年 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 ④정종 4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추기(靖宗 4年 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 追記) 등 총 4개의 문건으로 구성됐다. 무구정광탑과 서석탑은 모두 석가탑의 이전 이름이며, 형지기는 중수기에 빠진 내용과 수리 비용 등을 약식으로 기록한 문서다.
이중 논란의 핵심인 무구정경이 신라 때 것이라는 기록은 ①에, 고려 때 넣은 것이라는 기록은 ④의 문건에 등장한다. 이승재 교수는 “묵서지편만으로 무구정경의 연대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설령 고려 때 납입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고려 때 제작된 것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며 “신라 때 인쇄된 것을 보존하고 있다가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서지학 전공자인 천혜봉 조사위원장(성균관대 명예교수)과 박상국 문화재위원은 “이미 일본과 중국의 서지전문가들이 무구정경의 서체나 종이의 재질 등으로 볼 때 8세기 초 통일신라 제작이 분명하다고 확인했다”며 “묵서지편 일부 문구를 근거로 무구정경이 고려 초기 새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묵서지편은 현재 부식이 심각해 실물 연구가 어려운 상황이다.
불국사 석가탑 창건연대
삼국유사에는 석가탑이 경덕왕 10년(752년)에 완성됐다는 기록과 각간(角干) 김대성(金大城)이 시작해 혜공왕 때 완성했다는 기록이 나란히 쓰여 있다. 그러나 묵서지편 ③에는 “김대성이 경덕왕 즉위년(742년)에 개창했으나 끝내지 못한 채 물러나자 태자인 혜공대왕이 끝내어 완성했다”고 적혀 있다. 혜공왕이 태자로 있다가 즉위한 것은 765년이므로 석가탑 창건연대는 765년 이전으로 늦춰진다.
고려초 석가탑 중수 원인 및 과정
석가탑을 고려 시대 중수한 원인은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심각한 지진 피해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에 따르면 석가탑은 ▦1024년 2~3월 1차 중수 ▦1036년 6월21일 대규모 지진으로 석가탑 붕괴 위험 직면 ▦같은 해 8월 손상된 일부 건축물 수리 ▦1037년 ○월 연달아 지진 ▦1038년 ○월 2차 중수한 것으로 돼 있다.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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