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매춘여성이 우연히 청년 사업가와 계약 관계로 만나다가 진실한 사랑에 빠지는 영화 <프리티 우먼> 은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프리티>
줄리아 로버츠를 흥행스타로 만든 이 영화에서 상대역 리처드 기어의 직업은 인수합병(M&A) 전문가. 구체적으로는 적대적 M&A를 통해 재정이 어려운 회사를 인수한 뒤 쪼개서 파는 일이다.
좋은 의미로 구조조정 전문가요, 나쁘게 보면 기업사냥꾼이다. 1990년 개봉된 이 영화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사냥꾼으로 그려지는 것을 보면 M&A에 대한 당시 미국사회의 싸늘한 시선이 엿보인다.
▦국내에서는 인수합병이 자연스러운 기업 거래라는 생각보다는 남이 평생 일궈낸 기업을 빼앗는 부도덕한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다. 적대적 M&A는 말할 것도 없다. 외국계 자본이 SK그룹의 지주회사 SK의 경영권을 위협한 2002년 소버린 사태는 부정적 인식에 기름을 부었다.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달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경영권 방어에만 몰두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경영권의 강탈을 막기 위해 '황금주'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같은 보호 장치 도입을 재계는 외치지만, 정부는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고 외국인 투자유치에도 걸림돌이 된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눈총을 받던 인수합병이 요즘 국내 기업의 세계 진출 전략에 강력한 무기로 각광을 받는다. STX 조선이 유럽 최대 조선소이자 세계 2위의 크루즈선 제조사인 '아커 야즈'를 사들여 '꿈의 선박'이라는 크루즈선 분야에 진출한 사례가 상징적이다.
이에 앞서 두산그룹은 세계 7위의 건설 중장비 업체인 잉거솔랜드사 사업 부문을 매입해 식품회사에서 중공업 전문기업으로의 대변신을 완결지었다. 동양제철화학은 자신보다 5배 가량 덩치가 큰 미국 기업을 삼켜 고무나 안료의 원료인 카본블랙의 세계 3대 생산업체로 뛰어올랐다.
▦인수합병의 매력은 점프 효과다. 새로운 시장에 바로 진출할 수 있고, 내부 역량의 한계를 뛰어넘는 돌파구가 된다. 선진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익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중국이 게걸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전 세계를 상대로 알짜기업 인수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는 위험요인 또한 만만치 않다. 10여년 전 미국 PC회사인 AST를 인수했다가 쓰라린 실패를 맛본 삼성이 차세대 먹거리를 찾는 방법으로 인수합병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인수합병을 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할 때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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