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면 적이 죽어야 하니 싸울 수밖에 없었지.”(토벌군 출신 윤갑수씨) “조직과 조직의 싸움에 휘말린 우리 모두가 피해자죠, 뭐.”(빨치산 출신 정구현씨)
한국전쟁때 빨치산과 토벌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2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경남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당시 피로 물들였을 자리를 빨간 단풍이 뒤덮고 있는 26일 지리산 자락에서 빨치산과 토벌군들이 60여년만에 만나 뜨거운 화해의 포옹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는 토벌군 중대장으로 활약했던 윤갑수(83)씨를 비롯, 이동식(86) 문창권(77) 하재옥(78)씨 등 토벌군 출신 4명과 빨치산으로 지리산을 누비고 다녔던 정구현(81) 송송학(78)씨 등 2명이 나왔다.
1948년 고교재학중 ‘학생동맹’으로 활동하다 미군정포고령 2호 위반으로 복역한 뒤 1950년 6월 출감과 함께 빨치산으로 들어가 간부로 활동하다 1954년 자수했던 송송학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적대관계로 있던 사람들이 악수하고 화해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어렵사리 오늘의 만남에 참석했습니다.”
토벌군 출신 이동식(86)씨도 “지금 와서 빨치산과 토벌군이 무슨 필요가 있나, 모두들 세상을 떠나고 몇 명 남지도 안았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은 당시 놓여있던 100m길이의 통나무 다리가 콘크리트로 바뀌고 험한 산길은 아스팔트로 바뀐 현장을 하나씩 짚어가며 옛일을 회상하기도 했다.
토벌군 중대장이었던 윤씨가 “밤에는 빨치산에, 낮에는 국군과 경찰에 시달렸던 당시는 한마디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지….”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송씨도 빨치산 시절을 회고했다. “당시 빨치산은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는 신세였어요. 하지만 우리는 포로를 죽이지 않고 옷을 벗기고 무기만 뺏을 후 돌려보낸 적도 있고, 한번은 경찰과 토벌군이 우리를 위해 산속에 식량을 놓고 간 걸 보고 놀라기도 했어요.”
이들은 “지금이라도 좌우익은 물론, 억울하게 죽어간 주민들을 위한 위령탑과 위령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통일염원의 역사적 교육현장으로 활용돼야 한다”며 “우리라도 통일의 그날까지 자주 만나자”고 입을 모았다.
이날의 만남은 함양군 마천면 일대 주민들이 2만여명이 넘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01년부터 열어 온 ‘지리산천왕축제’(대회장 노길용ㆍ함양군의원) 행사의 하나로 마련됐다.
이들은 앞서 “수천명이 억울하게 죽어간 전쟁터 지리산에서 피워올린 평화의 횃불이 평화통일의 제단에서 활활 타오르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을 담아 남북정상 앞으로 보내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들은 편지에서 “우리는 역사의 가해자 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고 견딜 수 없는 상처를 60여년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며“이 상처를 치료하는 길은 평화와 상생을 바탕으로 우리민족끼리 통일을 이루는 길 뿐”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오도재에서 합동 위령제를 올리고, 병석에 있는 토벌군 출신 강석두씨를 병문안 한 뒤 백무동 온돌방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이어 27일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상여놀이에 상여를 함께 메고, 평화콘서트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경남도는 ‘빨치산이동루트’를 복원, 2001년부터 마천면내 사회단체와 주민들과 함께 지리산천왕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에는 천왕제 제사와 살풀이 공연에 이어 27일 백무동에서 ‘원한 맺힌 땅’ 공연, 행운의 축포 쏘기, ‘백두대간의 꿈’이란 제목의 시낭송, 상여놀이, 평화콘서트 등이 펼쳐진다.
지리산(함양)=이동렬기자 dylee@hk.co.kr정창효기자 ch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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