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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EBS 공동 논술기획/ 디지털 다매체 시대의 대중문화 바로보기

입력
2007.10.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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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제]

(나)의 관점에서 (가)에 나타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1,500자 내외)

*제시문 전문은 ebsi(www.ebsi.co.kr) 논술방에 게재

<학생글>

①예술을 위한 예술을 배격하고 인생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1920년대 KAPF는 그 성격 자체가 계몽에 가까웠다. ②그들의 행동강령이 예술을 무기로 조선 민족의 계급적 해방을 외쳤으니 ③문학 이면에는 드러나는 현상 이면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④오늘날 응용과학 결실의 이면에도 경제적인 힘에 의해 예술이 창조 되고 있다. KAPF가 계급의 해방을 목적으로 예술을 사용했다면 현대는 경제적인 부의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하고 있다. 순수 문학이 이데아에 가깝다고 한다면 예술은 어느 정도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⑤현대 과학이 집결체를 보여주고 있는 오늘날의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

유비쿼터스와 UCC로 인해 한 개인이 새로운 사실을 창조하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현대의 사회에서는 시민 모두 모두가 저널리즘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⑥사실 저널리스트는 사회적으로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글을 쓴다는 자체가 고도의 추상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05년 장지연의 시일야 방성대곡은 저널리스트가 보여줘야 하는 엘리트의 사회적 책임을 너무나 잘 보여준 사건이다. 저널리스트는 시대의 아픔과 번민을 함께 공존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UCC는 저널리스트가 보여줘야 할 엘리트적 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눈을 사로잡은 야릇한 사진들과 문구들이 인터넷 환경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⑦이러한 문제들은 인터넷 환경에 자리 잡고 있는 광고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광고의 목적은 우리의 눈을 사로 잡음과 동시에 마우스를 클릭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것은 클릭 숫자에 비례해 의해 광고의 수입료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인터넷 블로그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얼마나 많은 방문자를 기록했는지에 따라 그 블로그의 순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인터넷 저널리스트가 나아가야 할 비판적 진보 의식의 퇴보를 시사하는 것이다. UCC의 저널들은 방문 기록에 따라 대중이 원하는 글과 영상만을 편집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UCC의 발달은 개인이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놨다. 이제, 개인은 문학이나 예술을 수용하는 입장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창조할 수 있게 ⑧인터넷이란 거대한 무대가 있는 것이다. ⑨그러나 현대 예술 환경의 무대는 대중이 원하는 클릭 숫자에 의해 순위가 매겨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예술이 추구해야할 이상적 목표를 버린 것과 같다. 또한 클릭에 의해 순위가 매겨진다는 것은 천박한 산업 자본의 논리와도 같다. 노출의 강도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광고의 매출 순위와 너무나 흡사한 것이다. ⑩이러한 점이 거대 자본이 인터넷 UCC산업에 결부되는 가장 강력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순수 창작과 예술은 돈을 추구하지 않으며 ⑪대중의 포퓰리즘도 원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총평>

<세부첨삭>

[1단락 정리]

부적절한 서론입니다.

① 카프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실제 대입시에서는 논거로 사용하지 말도록 합니다. 흔히들 ②를 제시하면 ③은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이미 답이 알려졌다고 보죠. ‘문학을 혁명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라고 해서 부정적으로 판단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무엇인가 긍정적인 것이 있다라고 말하려면 기존의 사회적 가치와 싸워야 합니다.

논술문은 진리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맞는 답을 찾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채점할 때 부정적 영향을 줄 것들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문학 이면에는 드러나는 현상 이면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중복되는 표현입니다. ‘문학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정도로 수정합니다.

④ 복잡한 문장 전개입니다.

이 내용들을 보면 우선 대상과 현상을 묶어서 대상이라고 보고, 목적과 이면을 묶어서 속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내용들이 상호 연관성이 없이 별개로 존재합니다. 이는 논술자의 머릿속에서는 연결될지 모르지만 논리적 비약이 매우 심한 내용 전개입니다.

⑤그런데 앞에 그렇게 전개해 놓고서도 또 다시 각각 별개인 대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개하기 나름이죠. 그리고 본론에서 잘만 하면 과학과 예술의 관계도 증명이 될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앞선 내逾湧?상호 연관성이 없는 내용이므로 이 역시 제대로 된 의미를 예상하지 못하게 만들죠.

UCC의 원동력이 경제적 요인이라는 점을 전개하는 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전개된 문제제기로 보면 예술과의 관련성을 찾아야 하고, 예술에서 찾아야 할 내용은 논술자가 주장한 ‘어느 정도의 시대 반영’이라는 불분명한 내용입니다. 문제제기로서 부적절합니다.

[2단락 정리]

논리 전개상 의미 없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문장의 경우 UCC 저널이라고 했지만, UCC가 저널의 대표도 아니고, 앞부분의 내용들은 단순 광고와 클릭 수에 대한 내용 전개일 뿐입니다. 그러한 내용 중 일부가 UCC와 관련될 수 있지만 대부분 블로그와 인터넷 광고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반드시 UCC 저널과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⑥ 저널리스트에 대해 알려줄 필요 없습니다. 불필요한 부분입니다. ⑦광고와 방문자 수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는 논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삭제할 부분입니다.

[3단락 정리]

논제와 직접 관련이 없거나 각 요소들 간의 관계가 없는 내용들이 전개되어 있습니다. 논제 해결은 실패입니다. ⑧ 주어인 ‘개인은’과 호응이 안 되는 서술부입니다. 다음처럼 수정합니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⑨논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습니다. ⑩이렇게 되려면 UCC에 영상을 올리는 사람은 돈을 받아야 하지요. 그래야 거대 자본 운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의 흐름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제작자가 된다는 의미를 지니는 UCC와 직접적 연결성이 없습니다. ⑪느닷없이 등장한 포퓰리즘입니다.

[첨삭 후 학생의 추가질문에 대한 답변]

포퓰리즘은 인기영합주의로 바꾸지요. 전 논제가 예술과 ucc의 관계로 인식했는데 아닌가요?

-> 인기가 많으면, 많이 클릭하고, 돈이 된다. 그러니 인기영합주의가 아니냐는 논리입니다. 아주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흔히 포퓰리즘은 정치적인 인기영합주의를 말합니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부를 예로 들 수 있지요. 뭐 이를 원용해서 인기영합주의를 예술이나 경제와 연결하여 사용하려면 할 수도 있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그것도 글 전체의 마지막에 사용하려면 최소한 본론 전반부나 서론에라도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제시하고 이를 설명하여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개념정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주면 더 좋습니다.

김상규·서울 장훈고 교사·EBS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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