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압이 느껴지는 영화가 있다. 스크린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터질 듯 팽팽한 긴장감. 그 전압을 받아내며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뒷목이 뻑뻑해질 때까지 압박해 들어오는 압축 에너지는 흡사 납덩이 같다. 하지만 그것을 참고 영화를 본다. 폭풍이 몰아치듯, 그 에너지가 폭발하는 순간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25일 개봉한 <포미니츠> (감독 크리스 크라우스)는 압축과 폭발의 2행정(사이클)을 보여주는 내연기관 같다. 영화는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들로 실린더를 세우고, 그들이 마찰하며 내는 갈등으로 그 속을 채운다. 그리고 압력이 임계점에 달할 때까지 피스톤(분노와 죄의식의 관념)을 밀어 올린다. 마침내 발화하는 불꽃. 점화 플러그는, 절규하는 피아노 선율이다. 포미니츠>
두 명의 여인이 교도소에서 조우한다. 20살이 안 된 살인범 제니(한나 헤르츠스프룽)와 80살을 바라보는 피아노 강사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
목을 맨 동료 재소자의 주머니에서 태연히 담배를 꺼내 무는 제니는 의붓아버지로부터의 성폭력과 아이의 유산을 겪은, 황폐한 영혼의 소녀다. 차돌처럼 딱딱한 크뤼거도, 실은 젊은 시절 정인(情人)을 부정하고 목숨을 유지한 경험 속에 스스로를 유폐한 불행한 영혼.
크뤼거는 들짐승 같은 제니의 잠재된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녀를 조련해 콘테스트에 내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제니에게 피아노는 세상을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하는 도구일 뿐이다. 미친 듯 흑인음악을 연주하는 제니에게 크뤼거는 “너 같은 것이 감히”라며 손찌검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4분’의 카타르시스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이 영화는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제니의 몸짓을 빌어 세상을 향해 포효할 수도 있고, 크뤼거의 눈을 통해 죄의식의 기억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할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마지막 4분, 피아노의 절규에 온몸이 떨리는 전율을 만끽할 수도 있다. 숨을 멎게 만들 만큼, 이 영화의 폭발하는 엔딩신은 압권이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맞는 해원(解寃), 혹은 구원의 풍경. 콘테스트 결선 날, 제니는 스승이 정해 준 슈만의 곡을 찢어발기며 그 속에 흑인 음악의 뜨거운 피를 섞어 연주한다. 하지만 그 순간, 근엄하던 크뤼거의 표정은 오히려 환희로 뒤바뀐다. 크뤼거는 평생 마시지 않던 술을 연거푸 들이키며, 60년 간 가슴을 짓누른 돌덩이를 내려 놓을 준비를 한다.
연주를 마친 제니의 눈에도 들짐승의 불꽃 대신 하늘을 나는 새의 시원함이 담긴다. 한 번도 취해보지 않은 우아한 무대인사를 날리는 그녀의 팔에 경찰들이 수갑을 채우는 순간, 그것은 체포가 아니라 하늘로 비상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몸짓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스스로를 구원하는 순간,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올해 독일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12세 관람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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