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레미 시브룩 지음ㆍ김윤창 옮김 / 산눈 발행ㆍ272쪽ㆍ1만3,000원
#1 쇠가죽 채찍이나 잘 마른 가죽끈에 못 이겨 시계태엽처럼 일하는 소년들, 또는 여자아이들도 심심찮게 목도할 것이다. 열한살 먹은 어느 아이는 나무 뭉둥이에 다리가 부러졌고, 또 다른 소녀는 면직공장의 감독관 형상을 한 무자비한 괴물에게서 판자로 얻어맞았다.
#2 열네살의 한 소년은 트럭운전사 보조다.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하는데 운행일정은 종종 밤 11시나 12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그는 한 달에 약 2만원을 버는데 그 가운데 3분의 2는 가족- 그는 9남매 중 한 명이다- 에게 보낸다. 그는 트럭에서 살고 좌석에서 잔다.
19세기초 영국의 사회개혁가 존 필든이 당시 미국 노동현장을 기록한 보고서(#1)와 현재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사는 한 소년 노동자의 일상에 대한 르포(#2)를 읽어보자. 어떤 차이를 느낄 수 있는가?
‘안티 나이키 운동’이 잘 보여주듯 제3세계에서 자행되는 어린이 노동착취의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지도 꽤 됐다. 그것이 ‘제도화된 가장 극악무도한 부정이고, 성장ㆍ개발 모델의 수치’라는 주장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반(反)세계화 운동가이자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제레미 시브룩은 이 책을 통해 어린이 노동착취의 문제에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한다.
복잡하게 얽힌 역사ㆍ경제ㆍ문화적 맥락을 신중히 들여다봐야 문제의 근절,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개선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이런 일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문화적으로 열등한 나라에서나 생기는 일이라는 식의 시각은 위선’이라며 어린이노동 착취 문제에 대한 시각의 교정을 주장한다.
그는 엥겔스나 영국 학자 E P 톰슨을 인용, 현재 제3세계의 어린이 노동착취는 18,19세기 영국의 노동지대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대농장에서 벌어졌던 비극의 반복임을 주지시킨다.
‘어린이 노동은 비윤리적이니만큼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대의명분은 훌륭하지만 수혜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순진한 논리다. 가령 1995년 영국의 한 TV가 모로코의 12~15세 여자아이들이 영국에서 마크 앤 스펜서로 납품되는 잠옷을 만들어왔다고 폭로하자, 많은 모로코 소녀들이 해고됐다. 소녀들의 가정은 이 정도의 노동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다고 봤지만 결과적으로 어린이노동의 금지는 소녀의 가족들을 더욱 깊은 가난으로 몰아넣었다.
동의하기 쉽진 않겠지만 문화의 상대성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벵골어에는 태어나서부터 열여덟살까지를 의미하는‘미성년’이라는 단어가 없다. 따라서 방글라데시에서는 ‘노동에 대한 어린이들의 권리’라는 말이 거부감없이 동의를 얻는다.
하지만 세계자본주의 착취구조의 최하부에 어린이들의 노동이 깔려있고 이를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다.
저자는 3, 4세의 어린이를 낙타 위에 밧줄로 묶고 경주를 위해 이들의 공포감을 자극하는 아랍에미리트의 낙타경주나, 먼지와 기름을 뒤집어쓰고 금속성의 굉음에 시달리는 10대 초반의 소년을 무급으로 부려먹는 방글라데시의 자동차정비소의 사례를 들어 이런 노동의 비인간성을 폭로한다.
그렇다면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착취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는 다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환원된다. 저자는 비관적이다. IMF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 때문에 각국 정부는 건강, 영양, 교육 같은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이는 빈곤층에 가장 큰 타격을 준다.
그것은 곧바로 결손가정, 아동 성매매, 노동시장에 유입되는 아동의 증가로 이어진다. 저자는 어린이노동을 당장 근절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우선 가장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부터 금지시키는 일이 실천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제 ‘Children of Other Worlds’(2001).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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