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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길 위의 미술관' 온몸으로… 한낱 '가십'이 되길 거부한 여성미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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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길 위의 미술관' 온몸으로… 한낱 '가십'이 되길 거부한 여성미술가들

입력
2007.10.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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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란 지음 / 이프 발행ㆍ296쪽ㆍ1만8,000원

영국의 미술평론가 휘트니 채드윅은 “역사를 기술하는 이들이 남자들이기 때문에 남성작가의 인생은 ‘역사’가 되고 여성작가들의 삶은 ‘가십’이 되어 왔다”고 한탄했다.

<길 위의 미술관> 은 이 발언의 오류 입증을 위해 세워졌다. 저자는 결코 가십의 나락으로 떨어져선 안 되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찾아 순례하며 그들의 세계를 내면의 양피지에 한자 한자 새겼다. 미국 소설가 에리카 종의 표현을 빌자면 “정액이 아니라 월경의 피로 씌어진” 책이다.

당대의 가장 걸출한 여성 미술가 13인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길 위의 미술관> 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주축이었던 저자가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유럽 각지를 찾아다니며 만난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세계를 담은 책이다.

독일 조각가 키키 스미스, 프랑스 조각가 니키 드 생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 미국 조각가 에바 헤세, 프랑스 화가 쉬잔 발라동, 프랑스 출신 미국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 등, 그 자신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뜨거운 심장의 눈으로 내통한 작가들이다.

예술에 성별 구분이 웬 말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자는 “여자들의 그림 안에는 다른 충혈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피와 살과 내장에 뿌리를 내린 언어들”이었으며, 거기엔 여성 예술가로 살아가는 자들의 고통과 저항, 치유, 파괴, 울음 등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남성 미술가들이 전통적으로 만들어온 여성의 아름다움을 거부”하며 “나른한 섹시함과 에로틱한 판타지로 그들의 욕망에 복무하는 대신, 여성의 몸을 저항과 위반의 메타포로 뒤바꾼다.”

몸에 난 모든 구멍을 통해 끊임없이 액체를 흘려보냄으로써 ‘유동(流動)’의 여성성을 보여주는 스미스, 자궁회귀의 욕망을 자극하며 여체 내부로의 유쾌한 탐험을 제공하는 생팔, 폭압적 아버지의 예술적 살해를 통해 여성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부르주아,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유명화가들의 모델을 하다 어깨 너머로 그림을 익힌 후 강인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려온 발라동…. 이들에 의해 가부장적 시선으로부터 해방된 여성의 몸은 이제 그녀들이 살아온 몸의 체험 그대로 되살려진다.

익히 알다시피 여성 예술가는 오랜 세월 남성 예술가의 부속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영국 화가 레오노라 캐링턴(90)은 말한다. “나는 오래된 영혼입니다. 누군가의 뮤즈가 될 시간이 없어요.”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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