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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획/ 이 가을, 추억의 빛깔은 짙은 주황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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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획/ 이 가을, 추억의 빛깔은 짙은 주황색이다

입력
2007.10.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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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들을 생각해 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항상 우리 곁에 있었지만 잊혀졌고, 그 잊혀짐으로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다.

지난 여름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도 창간 25주년을 맞아 그런 기획기사를 낸 바 있다. 지난 25년간 우리 곁에서 사라진 25가지를 설문 조사한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그 중 대부분은 통신, 인터넷의 발달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공중전화 부스, 타자기, CD 등이었다.

우리에게도 망각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바로 공중전화 부스다. 여전히 길가에 서있지만 공중전화 한 통에 얼마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동전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던 모습은 옛추억이 되고 있다. 이제 공중전화를 찾는 이는 근무 중 휴대폰을 쓰기 어려운 군인들이나 전경들일 뿐 그들이 ‘작전’을 끝내고 떠나고 나면 공중전화 부스는 어김없이 텅 비고 만다.

덕수궁 돌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어여쁜 빨간 전화 부스. 그러나 슬프게도 아침이면 간밤에 채워진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그녀’를 본다. 급한 소식을, 기쁜 얘기를, 사랑의 밀어를 나누던 공중전화는 휴대폰에 밀려 존재하지만 잊혀져 가는 유물이 되고 있다.

또 하나의 잊혀짐은 바로 빨간 우체통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로 시작되는 고은의 시처럼 가을 편지하면 생각나는 것이 빨간 우체통이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편지를 적어 우체통에 넣고 답장이 올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추억은 이메일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2000년 이후 한해에 2000개씩 사라진다고 하니, 이제 빨간 우체통을 보려면 박물관을 가야 할까….

우리를 더 서글프게 하는 것은 공중전화 부스와 우체통이 사라지면서 그 빈자리를 조급함과 상실감이 메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체국에는 이런 얘기, 저런 사연의 편지대신 인터넷 쇼핑에서 주문한 소포들로 가득하다. 그 쌓인 소포들이 하루라도 늦게 오면 우리는 기다림에 목을 뺀다. 하지만 그 기다림에는 그리움의 미학은 없고 오직 조급함만 있을 뿐이다. 휴대폰도 그렇다. 상대방과 통화가 안될 때 기다리는 인내심은 사라졌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편리해지는 만큼 포기의 속도도 빠른 것 같다.

가을 빛이 완연한 오늘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보자. 그도 어려우면 빨간 전화부스로 달려가보자.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고백을 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행여 오랫동안 잊혀진 아름다운 추억들이 밀려와 이 가을을 더 아름답게 만들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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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조영호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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