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즐거워야 할 ‘가을축제’의 장에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양팀 간의 감정싸움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승리에 대한 집착만이 있을 뿐 상대를 존중하는 동업자 정신은 실종됐다. 그라운드에는 멱살잡이와 주먹 다툼만이 난무했고, 관중석에서는 여지 없이 물병이 날아들었다. 올시즌 프로야구를 갈무리하는 SK와 두산의 한국시리즈가 역대 최악의 시리즈로 흘러가고 있다.
25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양팀 선수들이 육박전에 가까운 몸싸움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단은 SK의 6회초 공격 때 일어났다. 두산이 어이없는 실책으로 7점을 내줘 0-9로 크게 되진 상황에서 타석에는 김재현이 들어섰다.
김재현은 볼카운트 0-1에서 두산 이혜천이 등 뒤로 날아가는 공을 던지자 마운드를 향해 뛰쳐나갔다. 순간 양측 덕아웃에서도 선수들이 모두 몰려 나와 그라운드는 아수라장이 됐다.
한데 엉킨 선수들은 서로 멱살을 붙잡았고, 상대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날리는 장면도 목격됐다. 양팀 코칭스태프가 나와 선수들을 말려봤지만 허사였다. 감정에 복받친 선수들은 몸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SK 선수들은 덕아웃으로 들어갔다가 또 다시 그라운드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선수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6분 동안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3만500명의 관중들은 이 장면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결국 양팀 선수들의 추태는 위협구를 던진 이혜천이 퇴장 당하며 마무리 됐지만 다시 돌이킬 순 없었다.
양팀의 난투극은 예상된 결과였다. 시즌부터 해묵은 감정은 한국시리즈 들어 더욱 증폭됐다. 선수단의 수장인 김성근 SK 감독과 김경문 두산 감독은 적장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고 날 선 감정 대립을 했다. 인천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는 홈팀인 SK가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두산이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두산 프런트가 사과를 해야 했다.
2차전에서는 SK 채병용과 두산 김동주가 빈볼 시비를 벌이며 양팀 선수들이 한차례 대치 상황을 연출했다. 두산 선수들은 2차전까지 몸에 맞는 볼 6개를 맞았고, 급기야 베테랑 안경현이 손가락 골절상으로 시즌을 마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SK는 결코 빈볼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됐든 프로 의식을 망각한 채 육탄전을 벌인 양팀 선수들의 그릇된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가을축제의 진정한 주인은 선수들이 아니라 야구장을 찾은 팬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역대 한국시리즈 사상 6번째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한 SK는 두산을 9-1로 완파, 2연패 후 첫 승을 거두고 벼랑 끝에서 살아났다. SK의 외국인 선발 마이클 로마노는 6이닝 4피안타 2사사구 1실점의 역투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타이인 5연승을 거두는 동안 단 한 개의 실책도 기록하지 않았던 두산은 0-2로 뒤진 6회 유격수 이대수가 혼자 에러 3개를 범하는 바람에 7실점하며 자멸했다.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2차전 MVP를 차지했던 이대수는 포스트시즌 사상 처음으로 한 이닝에 실책 3개를 범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양팀은 26일 오후 6시부터 리오스(두산)와 김광현(SK)을 선발로 내세워 잠실 구장에서 4차전을 벌인다.
이승택기자 lst@hk.co.kr이상준기자 jun@hk.co.kr
■ 양팀 감독의 말
▲ SK 김성근 감독 "로마노 집중력 좋았다"
선발투수 로마노가 1회부터 구위가 좋아서 길게 던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로마노가 잘 던져 승리를 낚았다. 로마노는 올시즌 들어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줬다. 경기 도중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싸움이라는 것은 서로 상대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선수들 몸이 풀린 것 같아 4차전도 잘 하리라고 본다. 4차전 선발은 원래 송은범을 생각했는데 몸이 좋지 않아 김광현을 올리기로 했다. 시즌 막판에 괜찮은 모습을 보여 기대하고 있다.
▲ 두산 김경문 감독 "내일은 리오스 선발"
4년째 감독을 하면서 오늘처럼 최악의 경기는 없었다. 야구팬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안경현이 이미 몸에 맞는 볼로 희생된 상황에서 오늘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돼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혜천은 오랜만에 등판한 것 치고는 나름대로 잘 던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실책이 아쉽다. 내일은 리오스를 선발로 내세워 오늘 못 보여준 멋진 경기를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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