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을 담당했던 보안사 문관이 찾아와 조계종 총무원장 명의로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으로 추대되기를 바란다' 또는 '전두환 장군을 대통령으로 추대'라는 내용을 5대 신문에 광고로 내달라고 2번이나 요청했고, 모두 거절했다."(월주 전 총무원장)
정부 수립 이후 최대 불교 탄압 사태로 불리는 1980년 신군부의 '10ㆍ27 법난(法難)'의 상세한 정황이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재조사로 드러났다.
과거사위가 25일 발표한 '10ㆍ27 법난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 초 내분을 겪고 있던 조계종은 분규 세력끼리 종단의 불화를 종식한다고 약속하고 4월 월주 스님을 총무원장에 선출했다. 하지만 신군부와 문공부는 총무원장을 중심으로 한 조계종 '개혁 세력'에 강한 경계감을 가지고 있었다.
국보위가 3단계에 걸친 사회정화계획을 수립한 것은 6월 초. 1단계(7월 중)에 공직자와 사회지도층을 정화하고, 2단계(8~9월)로 경제계와 공직자 추가 정화를 실시한 뒤 10월 이후 종교ㆍ언론 등의 분야를 정화한다는 계획이었다. 합동수사본부(본부장 노태우 보안사령관) 산하 합동수사단이 '불교계 정화계획-45계획'을 준비한 것은 9월부터다.
이에 따라 10월27일 새벽 월주 스님 등 45명을 체포ㆍ연행하고 주요 직위 사퇴서를 강제로 받아냈다. 30일에는 간첩이 사찰에 침투해 있다는 첩보를 내세워 전국 5,731곳의 사찰과 암자를 강제 수색했다. 연행된 승려들의 승복을 벗기고 수의 또는 군복으로 갈아입힌 뒤 몽둥이 구타와 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가 가해졌다.
5공 청문회와 월주 스님을 만났을 때 "보안사에서 한 일이지 나는 잘 몰랐다"고 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계엄사 지시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조계종 정화중흥회의 스님과 만난 자리에서 "절은 참선 등 수행하는 곳인데 어떻게 깡패들이 서식할 수 있냐"고 말해 사태의 전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과거사위는 "신군부가 성직자를 고문하고 부정축재자로 허위 발표한 10ㆍ27 법난은 대표적인 국가권력 남용 사건"이라며 명예와 피해 회복 방안을 조계종 종단 측과 협의하도록 정부에 권고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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