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 은 알싸한 '동백꽃' 향기로 첫사랑의 몽롱한 기억을 더듬는다. 그런데 노란 동백꽃은 볼 수도 없고, 동백꽃에 코를 대고 킁킁거려 보아도 아주 연한 향기는 느낄 수 있지만 알싸한 향기를 맡을 수는 없다. 동백꽃>
김유정의 '동백꽃'은 뒤마의 소설 <춘희> 나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 에서 떠올릴 수 있는 동백꽃이 아니라, 강원도 사투리로 '동박' '동백'이라고 불리는 생강나무이기 때문이다. 이른 봄 산수유처럼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를 떠올리면 소설 <동백꽃> 의 향기는 더욱 짙어진다. 동백꽃> 동백아가씨> 춘희>
■대중가요 <첫사랑> 의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에 나오는 '으악새'가 새 이름이 아니라 '억새'의 사투리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정도가 됐다. 억새가 바람에 서걱대는 소리에 기댄 작사자의 비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런데 이 '억새'도 '갈대'의 착각일 가능성이 있다. 첫사랑>
같은 벼과에 속하는 갈대와 억새는 서식 환경이나 이삭과 줄기, 잎과 뿌리의 모양이 다르지만 정확히 구별하는 사람은 드물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억새보다는 갈대가 내는 소리가 '노래'나 '울음'으로 흔히 묘사돼 왔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에는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라는 구절이 있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는 이발사가 참다 못해 흙구덩이에 대고 말한 미다스왕의 비밀을 퍼뜨리는 갈대가 나온다. 임금님> 엄마야>
신경림의 시 <갈대> 에서도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피트 시거가 처음 부르고, 존 바에즈, 마를레네 디트리히, 나나 무스쿠리 등 숱한 가수들이 뒤따라 부른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의 노랫말 출처인, 미하일 숄로호프의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 의 민요에도 '꽃 따는 소녀' 대신 '갈대 꺾는 소녀'가 나온다. 고요한> 갈대>
■갈대는 억새보다 키가 더 크고, 줄기에 살이 많아 두툼하고, 이삭은 억새처럼 곱기보다 털갈이하는 짐승처럼 어딘지 엉성한 느낌이 든다. 갈대는 강이나 호수 등 물가에서 자라지만, 거칠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물을 멀리 떠나서는 맥을 못 춘다.
반면 억새는 이삭의 고운 자태와는 달리 산마루나 중턱, 논밭과 무덤 가 등 어느 곳에서나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바람에 서걱대기'에는 억새보다 갈대가 더 잘 어울린다. 갈대와 억새가 제철이다. 멋지게 핀 이삭이 떼로 바람에 흔들리는 장관이야 갈대나 억새나 같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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