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갈대와 억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갈대와 억새

입력
2007.10.25 00:02
0 0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 은 알싸한 '동백꽃' 향기로 첫사랑의 몽롱한 기억을 더듬는다. 그런데 노란 동백꽃은 볼 수도 없고, 동백꽃에 코를 대고 킁킁거려 보아도 아주 연한 향기는 느낄 수 있지만 알싸한 향기를 맡을 수는 없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뒤마의 소설 <춘희> 나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 에서 떠올릴 수 있는 동백꽃이 아니라, 강원도 사투리로 '동박' '동백'이라고 불리는 생강나무이기 때문이다. 이른 봄 산수유처럼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를 떠올리면 소설 <동백꽃> 의 향기는 더욱 짙어진다.

■대중가요 <첫사랑> 의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에 나오는 '으악새'가 새 이름이 아니라 '억새'의 사투리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정도가 됐다. 억새가 바람에 서걱대는 소리에 기댄 작사자의 비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런데 이 '억새'도 '갈대'의 착각일 가능성이 있다.

같은 벼과에 속하는 갈대와 억새는 서식 환경이나 이삭과 줄기, 잎과 뿌리의 모양이 다르지만 정확히 구별하는 사람은 드물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억새보다는 갈대가 내는 소리가 '노래'나 '울음'으로 흔히 묘사돼 왔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에는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라는 구절이 있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는 이발사가 참다 못해 흙구덩이에 대고 말한 미다스왕의 비밀을 퍼뜨리는 갈대가 나온다.

신경림의 시 <갈대> 에서도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피트 시거가 처음 부르고, 존 바에즈, 마를레네 디트리히, 나나 무스쿠리 등 숱한 가수들이 뒤따라 부른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의 노랫말 출처인, 미하일 숄로호프의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 의 민요에도 '꽃 따는 소녀' 대신 '갈대 꺾는 소녀'가 나온다.

■갈대는 억새보다 키가 더 크고, 줄기에 살이 많아 두툼하고, 이삭은 억새처럼 곱기보다 털갈이하는 짐승처럼 어딘지 엉성한 느낌이 든다. 갈대는 강이나 호수 등 물가에서 자라지만, 거칠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물을 멀리 떠나서는 맥을 못 춘다.

반면 억새는 이삭의 고운 자태와는 달리 산마루나 중턱, 논밭과 무덤 가 등 어느 곳에서나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바람에 서걱대기'에는 억새보다 갈대가 더 잘 어울린다. 갈대와 억새가 제철이다. 멋지게 핀 이삭이 떼로 바람에 흔들리는 장관이야 갈대나 억새나 같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