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이 형에 홍상을 붙잡고 울며 왈 우리 형제 일시도 서로 떠날 적 없더니 홀연 금일은 나를 버리고 어디를 가려하시나요 하며 쫓아와 오거늘 장화홍련의 잔인한 형상을 뵈 간담이 촌촌이 끊어지는 듯 한지라….”
24일 낮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 <삼국지> <전우치전> 등 1910~1950년대에 활자본으로 간행된 고전소설을 선보이는 ‘통속과 정념의 매혹, 옛날 이야기책을 만나다’ 전시회 개막식이 열렸다. 전우치전> 삼국지>
미술관 뜰에서 누렇게 빛이 바랜 활자본 고소설 <장화홍련전> 을 펼쳐들고 비장한 목소리로 장화와 홍련이 이별하는 대목을 읽어주는 한 할아버지의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호롱불 아래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어르신들도, 벽안의 외국인 관광객들도 신기하기는 매한가지다. 장화홍련전>
우리시대의 마지막 전기수(傳奇叟ㆍ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는 이야기꾼) 정규헌(71)옹이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충남 청양군 청양면 30호 안팎의 농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정 옹은 열한 살 무렵부터 전기수로 나섰다. 라디오, TV 같은 대중매체가 보급되지 않고 문맹률도 높았던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농촌에는 옛 소설을 들려주는 이야기꾼 노인들이 한둘 씩 있었다.
“선친이 청양에서 소문난 이야기꾼이라 집에 옛소설책이 많이 있었지. 일찌감치 한글을 깨치고, 선친을 따라 소설을 읽었더니 ‘어린 놈이 제법 한다’며 칭찬해주시더군….” 열살 남짓한 정아무개가 이야기 잘한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고 그는 초저녁마다 이웃집으로 불려 다니며 마을의 스타로 대접받았다.
심청이 인당수로 팔려나가는 대목을 읽을 땐 자신도 울고 청중인 부인네들도 훌쩍거려 안방은 눈물바다가 됐고, 고생 끝에 성공해 적들을 일패도지로 몰아놓는 전쟁영웅 조웅의 활약상을 들려줄 때면 사랑채 안은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낮에는 농사 짓고 밤이면 이야깃꾼 노릇을 한 그는 초저녁부터 소설을 읽어주다 보면 훌쩍 동이 터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 때를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한다. “언젠가 딱 한번 부잣집에서 명절 때 수고했다면서 옷 한 벌을 해주시더군. 보통 이야기꾼의 대가라곤 고구마, 동치미국물, 국밥, 양말 같은 거였어. 그래도 마냥 좋았지. 허허허….”
그가 전기수로 목청을 뽐내던 시기는 60년대 초에 막을 내린다. 대중매체의 보급으로 시골에서 낭독문화가 사라져갔고 그는 대전과 군산의 제지공장에서 30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다시 세상에 알려진 때는 정년퇴직한 뒤인 1996년. 민속학자 심우성씨가 공주에서 열린 민속축제에 그를 초대한 것이 계기다.
이후 지역 방송국, 지역축제 등을 통해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은 ‘전기수’로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3년 전 도 지정 무형문화재 ‘얘기장사’ 부분에 자신의 고소설 구연능력을 신청했지만 여전히 ‘심의 중’ 이란다. 두 아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생계를 유지할 만한 직업적 전망이 없는데 부모 마음으로 선뜻 전수해 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판소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고담(古談) 소설이 모태가 됐어요. 그것을 음악적으로 읽어주던 전기수야말로 고래 심줄 같이 튼튼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지요. 죽기 전에 이를 전수할 사람을 만났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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