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지하철 9호선 공사(913공구)가 한창인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 보행로 한쪽에 뚫린 공사현장 출입구에 다가서자 눈 앞이 캄캄해졌다. 군데군데 서있는 철제 기둥과 각종 시설물, 그 사이에 위태롭게 걸린 수많은 관과 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 등….
내부 구조물을 피해 요리조리 걸린 가파른 철제 사다리를 타고 5분쯤 내려가자 믿기지 않는 장면이 펼쳐졌다. 지하 40m 깊이에 웬만한 실내체육관보다 큰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길이 160m, 폭 30m, 높이 25m의 터널이다. 끊임없이 들리는 굉음들을 따라 들어가니 대형 포크레인 3대가 터널 내 바위를 분주히 깨내고 있다.
“아치형의 천정이 기둥 하나 없이 지하철3호선과 그 위의 강남지하상가, 왕복 10차선인 신반포로의 육중한 하중을 떠받치고 있다”는 현장 안내자의 설명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곳은 역대 서울 지하철 건설 구간 중 최대 난공사 지역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대형 건물과 지하상가가 밀집해 자칫 잘못됐을 경우 지반이 무너져 내릴 수 있는데다, 지하철 3호선과 상하 15㎝의 간격으로 교차하기 때문이다.
위험구간인 만큼 첨단 특수공법이 사용됐다. 최대 길이 106m, 지름 2.5m의 대형강철관 10~13개를 가로로 박고 관 내부를 다시 철골과 콘크리트로 채워 지지기반을 만든 뒤 그 하부를 굴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공법 덕분에 지하상가와 도로의 통제 없이 공사가 진행됐다. 총 길이 1.8㎞인 913공구 전체 공사비 1,700억 중 이 터널을 뚫는 데에만 절반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이 작업이 끝나면 터널 중간 높이에 상판이 놓이고 그 위아래로 대합실과 전철 레일이 설치된다.
쌍용건설 권오태 현장소장은 “운하도시인 이탈리아 밀라노의 지하철 공사에 적용된 ‘셀룰러 아치 공법(CAM 공법)’과 기존의 튜브공법(TRCM 공법)을 결합, 이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며 “일본 프랑스 스위스 등 선진 토목 기술자들이 찾아와서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찾은 곳은 또 다른 마(魔)의 구간으로 불리는 여의도 909공구. 위태롭게 걸린 사다리를 또 타고 내려갔다. 지하 2층 깊이쯤 내려가자 시원하게 뚫린 9호선 여의도역사가 나타났다. 지하철 5호선을 건설할 당시 만들어놓은 것이다. 5호선 역사는 지하4층에 자리잡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여의도역에서 승객들은 수직 이동만으로 환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형의 터널 내부 벽은 수많은 콘크리트 조각(segment)으로 깔끔하게 정리돼 레일만 깔리면 금방이라도 전철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로 1.2m, 세로 3.5m 크기의 콘크리트 7조각이 서로 결합해 하나의 원통을 이루고, 또 다른 원통이 앞의 원통과 결합돼 3.6㎞의 터널을 이뤘다. 2만1,000여개의 조각이 이루는 거대한 터널인 셈이다.
이곳은 지하철 5호선과 교차하고 정치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자리한데다 지반이 지하수와 모래 자갈 등으로 이뤄져 쉴드(shield)터널 공법이 도입됐다. 원통형 강재(shield)를 지중으로 내린 뒤 전기면도기 날과 같은 커터가 회전해 굴착하면, 바로 뒤에서 미리 제작한 터널 벽조각을 조립해 나가는 방식이다.
직경 7.8m, 길이 8.5m, 무게 550톤의 거대한 쉴드 덕분에 왕복 3.6㎞의 터널을 뚫는데 걸린 시간은 35개월. 국회 아래 약 20m 지하를 통과했지만 국회에서는 한참 뒤에야 공사 사실을 알아차렸을 정도로 조용했다.
서울시 도시철도건설본부 신한철 건설부장은 “디자인과 안전성은 물론 편의시설 등 세계 최고 수준 지하철”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9호선은 김포공항-여의도-강남구 논현동까지 25.5㎞구간이며 2008년 말께 완공되고, 3, 4개월의 시운전을 거쳐 이듬해 봄에 정식 개통한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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