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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문학에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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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문학에 길을 묻다

입력
2007.10.2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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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햄릿'은 인간이 주어진 운명과 싸우다가 인간답게 죽는 비극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그는 중세의 덕을 지닌 인간들이 르네상스적인 간교한 인간들에 의해 파괴 당하는 것을 그리려 했다. 그것이 당시 삶의 진실이다."

23일 저녁 7시30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 39층. 황동규 서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의 열강이 1시간 이상 이어졌다. 황 교수가 전하는 '문학의 비밀과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려고 귀를 쫑긋 세운 수강생들은 서울대의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에 참가한 경제계 인사 40여 명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은행ㆍ증권사 임원, 경제연구소장, 경영학 교수들로, 매주 한 번씩 모여 논어와 주역(周易), 괴테와 칸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고전을 읽고 강연과 토론을 벌인다.

최근 우리 경제계에'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50대를 넘긴 경제계 인사들이 고전의 세계가 주는 지혜의 바다로 달려가 삶을 성찰하고 인생을 재충전하기 위해 인문학 강좌에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돈벌이'와 무관한 인문학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3만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선 기존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데, 바로 인문학이 창조적인 발상과 상상력, 미래 전망의 해법을 제시해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철우(64) 롯데쇼핑㈜ 사장은 "인간의 소비욕구를 보다 섬세하게 파악하고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며 "바로 그 지혜가 인문학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인철(57) LG생명과학 사장은 "경영의 리더십이나 조직문화 운영의 근본은 바로 사람에 달려 있다"며 "문학ㆍ역사ㆍ철학 등 인문학의'사람다운 삶'에 대한 열정을 배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영한(50) KB국민은행 부행장은 "외국인들과 만날 때마다 그들의 인문학 소양에 놀랐다"며 "글로벌 경영시대에 그들의 감성과 논리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참다운 소통이 어렵다는 생각에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손언승(50) 삼영회계법인 대표는 "매시간 수치에 얽매여 인과관계를 따지고 분석에만 매달리다 보면 심적으로 허전하다"며 "고전읽기를 통해 사물을 다른 각도로 보는 시각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인문학을 택한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동일했다. 고전과의 대화를 통해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로 불리는 미래를 선점할 창의력과 상상력을 찾겠다는 것이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포스코는 철강 생산에 고로(高爐)가 당연히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고로가 필요 없는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개발했다"며 "이는 경영자의 상상력에 구성원의 창조력이 결합된 결과"라고 강조했다.

베스트셀러 <생각의 탄생> 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 미시간주립대 교수도 "한국 기업이 저성장의 굴레에 빠져든 것은 창조성이 결여된 일 중심의 문화 때문"이라며 "그 해결책은 문화와 감성을 살릴 수 있는 인문학에 있다"고 말했다. 이제 인문학은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해주는 미래학으로 거듭나고 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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