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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07 시대정신 대기획] <2> 선진화 VS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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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07 시대정신 대기획] <2> 선진화 VS 제3의 길

입력
2007.10.2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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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성린 vs 김형기

시대정신 대기획의 두 번째 토론회는 보수, 진보의 대표적 이론인 선진화론과 제3의 길을 놓고 어느 쪽이 우리의 미래에 더 적합한가를 탐구했다.

원로 학자들이 나섰던 첫 토론이 잔잔했던 데 비해 양 진영의 대표적 이론가인 나성린 교수와 김형기 교수가 나선 이날 토론은 격렬하면서도 진지했고, 냉정하면서도 열띤 논리의 접전이 이루어진 '전장(戰場)'이었다.

_선진화론은 그 동안 정교한 논리 없이 현실만을 해온 보수의 확실한 이론이고, 제3의 길은 현실적 한계에 봉착했던 진보이론의 탈출구가 되고 있습니다. 선진화론과 제3의 길을 각각 설명해주시지요.

나성린 교수= 유럽의 제3의 길은 사회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시장경제의 장점을 수용하려는 것이고, 선진화는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시장경제의 약점인 소외계층의 분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사구시적 관점이지요.

선진화의 목표는 모든 측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자는 것입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적 선진화입니다. 현 시점에서 경제적 선진화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진화를 자꾸 이야기 하는 이유는 선진화에 이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9년부터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의 14% 이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장동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 이전에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면 영원히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10년 남았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기 위해서는 매년 5.2% 이상 경제 성장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선진국일수록 서민, 빈곤층이 적은 게 현실이고 선진화의 목표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김형기 교수=한국경제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양대 문제에 직면해있고 , 이 문제가 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면서도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인 목표가 필요합니다. 과거 패러다임인 발전국가 혹은 개발독재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지요. 현재의 신자유주의는 지속 불가능합니다. 이대로 가면 양극화는 더욱 더 심해집니다.

지속가능한 진보는 참여 연대 생태 등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3의 길이지요. 그렇다고 개발독재를 주도해온 재벌체제를 한꺼번에 해체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제안한 것이 재벌체제에 이해관계 자본주의를 더하자, 즉 주주 노동자 채권자 소비자 시민의 이익까지도 고려한 기업경영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정치ㆍ사회적 안정성을 통해 성장과 복지를 함께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_제3의 길이 좌파의 논리를 세웠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세계화와 시장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나 교수께서 문제점을 지적해주시지요.

나= 제3의 길이 추구하는 목표는 선진화와 거의 비슷하지요. 다만 방법론이 다릅니다. 선진화는 시장경제에 발을 붙이고 있고, 제3의 길은 사민주의에 발을 붙이고 있습니다. 결국 어떤 것이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서구의 복지국가 도입과정을 보면 20세기 초 경제적 선진국이 된 후 복지국가로 나갔습니다. 그 제3의 길을 한국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후발국의 추격을 벗어나고 선진국과 경쟁해야 하므로 당분간은 경쟁력 향상이 시급합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소외계층, 빈곤층 문제는 선진국이 될 때까지 사회안전망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지요. 소외계층을 도와줄 때도 자립능력, 경쟁력 기르도록 해주고, 일자리를 줘서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려면 부(富) 창출 그룹이 더 잘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동반 성장에 치우치다 보면 잘하는 그룹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경제가 침체되고, 소외계층 도울 수가 없게 되지요. 동반성장론자들은 복지, 분배를 통해 성장을 더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처럼 한참 성장을 해야 하는 국가에서는 실효성이 없습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분배ㆍ복지를 통해 성장한다 했는데 빈곤ㆍ서민층은 오히려 더 힘들어지지 않았습니까. 성장을 못해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_선진화론은 신자유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는 반론도 있는데 김 교수께서 역으로 반박을 해보시지요.

김= 우선 동반성장을 설명하겠습니다. 동반성장은 분배 차원에서만 제기된 것이 아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경제 각 부분의 성장 잠재력을 함께 키워나가자는 것입니다. 지방과 중소기업, 내수산업의 성장력을 중앙, 대기업, 수출산업처럼 높이자는 것이지요. 참여정부는 동반성장의 중요성을 늦게 인식, 초기 담론 수준에 머물다가 정작 정책을 추진하려고 할 때는 국민 신뢰가 떨어져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정부가 제대로 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지식투자 비중은 미국 스웨덴 핀란드에 이어 4위로 연구개발, 소프트웨어 투자는 OECD 국가 중 아주 높은 수준이지만 인적자원 개발이나 복지 등 사회투자는 멕시코 수준으로 낮습니다.

다음은 선진화론을 보지요. 한국형 선진화라고 하는데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선진화론의 골자인 공동체자유주의를 경제적 측면(사유재산, 영리추구, 노동력 사용의 자유)으로 해석하면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는 충돌합니다. 결국 경제적 자유주의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중산층 해체, 양극화 심화 같은 경향이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또 복지를 지나치게 시민사회의 자율성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국가와 정부의 정당한 역할에는 소홀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자유주의가 지배해 버리게 됩니다.

나= 공동체자유주의를 오해하고 있군요. 여기서 공동체는 공산주의의 공동체가 아니고 우리의 전통적인 두레에서 기초합니다. 더불어 협조하며 도와가는 것을 의미하지요. 자유주의에 기반하면서 자유주의의 폐단을 보완하는 것이 공동체자유주의로 시장에만 맡기는 신자유주의와는 다릅니다.

물론 자유주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빈곤층을 자유주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기존에는 국가가 모든걸 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국가가 모든 걸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요. 그 경우 큰 정부가 나오고 비효율이 초래됩니다. 가족 기업 종교단체 비정부기구(NGO)가 모두 복지증진을 위한 노력을 같이 하자는 차원에서 공동체 자유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다시 동반성장으로 넘어가자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앙과 지방이 같이 성장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지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강조점은 항상 약자에게 가고, 결국 효율성이 떨어져 동반 성장이 아니라 동반 하락을 하게 됩니다. 우선은 경쟁을 치열하게 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 다음에 뒤쳐진 사람을 위해 정부가 여러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동반'이라는 말로 잘 나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면 안 됩니다. 동반성장론자들은 고교평준화 제도를 신봉하겠지만 그래서는 교육경쟁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선진화는 모든 국민이 더불어 인간답게 잘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서민의 삶을 높이기 위해서도 일단 선진국이 돼야 합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하류층은 더 살기 힘들어지지 않았나요.

김=동반성장 정책이 하향평준으로 귀결된다면 나도 반대할 것입니다. 진보의 입장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고교평준화나 본고사폐지에 반대합니다. 이 제도가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선진경제는 3개로 구성돼야 합니다. 하나는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로 성장의 동력을 창의성에서 찾자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지식경제기반 사회에 적합한 이론입니다. 두 번째는 협력경제(Cooperate economy)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내수와 수출기업의 협력을 통해서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자는 것입니다. 성장이 오래 가기 위해서는 협력경제가 필수적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동반 성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청정경제(Clean economy), 즉 녹색기술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자는 것입니다. 최근 실리콘벨리를 주도하는 것은 IT가 아니라 GT(Green technology)입니다. 이 같은 '3C 경제'가 선진경제의 핵심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동반성장이 단순한 분배의 개념, 제로섬의 논리로 간다면 나도 반대하지요.

_선진화론에서도 민관협치(民官協治)라는 수단이 나오고 제3의 길에서도 사회적 대타협론이 있습니다. 민관협치는 노조와 서민이 기업과 경쟁력 있는 세력들의 성장론에 동의해주자는데 핵심이 있고, 사회적 대타협은 성장을 밀어줄 테니 일자리창출, 고용안정을 내놓아라는 것 같습니다. 양자가 조정할 수 있는 수준인지요.

나= 우리 같은 학자들은 가까이 가려 하는데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른 것 같습니다. 동반성장을 하면 좋은데 그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른(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우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그걸 우려하는 것입니다.

_문제는 현실 적합성입니다. 이를 따지기 위해서는 한국경제가 지금 어떤 수준인가를 진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 87년 이후를 놓고 보면 삶이 나아졌다고 하는데 97년 이후를 놓고 보면 나빠졌다는 응답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나= 우리 경제가 꾸준히 발전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경제규모로 봐도 세계 13위, 1인당 국민소득은 50위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걱정은 경제가 더 좋아질 수 있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정체됐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 지난 몇 년을 허비했습니다. 절대적인 삶의 질은 분명 올라갔지만, 경쟁 국가보다 상대적인 질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97년 외환위기는 앞만 보고 달리던 우리경제가 속으로 곪은 것이 터진 것이지요. 한번 겪어야 하고 위기를 기회로 발전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하지만 결국 빚으로 극복한 것이었습니다. 국가부채는 4배, 가계부채는 2.1 배 늘었고 그 빚은 다음 세대, 다음 정부로 넘어온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경쟁력 향상을 했어야 하는데 하지 못했습니다. 이 정부는 좌도 우도 아니고 반(反)기득권 정부인 것 같습니다. 다고 나라가 잘 되는 것 아니다. 초기에 반기업, 반엘리트 정서를 너무 많이 부추겨 국론 분열, 기업의 투자의욕 상실, 경쟁력 제고 실패를 초래했습니다. 지난 5년은 세계적으로 최대 호황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보다도 낮았고,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경쟁국보다도 낮았습니다. 더 잘할 수 있는데 못한 것입니다.

김= 그래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다시 찾은 10년'이란 반론도 있습니다. 97년 위기는 발전국가, 개발체제의 내부적 취약성 속에서 섣부른 개방을 하는 바람에 발생했습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발전국가 세력, 즉 한나라당이 주도했던 발전모델의 귀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어려움을 민주정부의 책임으로만 몰기는 힘듭니다.

물론 민주정부가 잘못한 것도 있고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원인을 보면 더 큰 책임이 개발독재, 산업화세력에 있습니다. 민주정부도 일관성있게 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책임은 피할 수 없지요.

경제성장에 있어서도 OECD 국가에 비하면 성장을 더 했습니다. 결국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장이 더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은 정치적 수사일 뿐입니다. 문제는 경제위기에서는 벗어났으나 양극화라는 더 큰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이 같은 문제점을 너무 늦게 인식해 대응정책을 실행하려는데 레임덕이 와 버렸습니다.

_선진화 이론의 틀을 만든 박세일 교수는 김영삼 정부 때 세계화 정책을 추진했으나 그 결과는 외환위기로 나타났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복기를 해주시지요.

나= 그 때 세계화가 잘 됐으면 경제가 많이 나아졌을 것입니다. 세계화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고, 그에 맞게 각 분야 구조개혁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의 이기주의에 막혀 좌절됐습니다. 사법개혁도 그때 출발했는데 이제야 되고 있습니다. 교육개혁, 연금개혁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개혁이 잘 안됐고 그래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외환위기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집단 이기주의는 재벌과 노조, 상층ㆍ하층, 좌우 없이 마찬가지였습니다. 외환위기는 반성의 계기였고 한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습니다. 중국도 그런 위기가 닥칠 것으로 봅니다.

_참여정부 5년의 정책과 노선을 점검해보시지요.

김= 노무현 정권은 경제에서는 신자유주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김대중 정부도 그랬습니다. 관료의 90%가 미국 유학을 했고 그 중 90%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시카고학파였습니다. 다만 조금 교정한 것이 복지 부분이었습니다. 복지 예산을 늘렸는데, 이는 아주 약한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걸 우파는 좌파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오히려 새로운 차원의 국가주의적 요소가 있었습니다. 혁신정책과 균형발전을 국가가 밀어붙였는데 신국가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국가가 너무 강하게 개입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신자유주의와 약한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강한 신국가주의적 요소가 섞여 있었다고 봅니다.

나= 약간 견해가 다릅니다. 우리가 왜 좌파적 정부라고 하느냐면 정부주도적 요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4대법(국가보안법, 사학법, 신문법 과거사법) 문제로 국론을 굉장히 분열시켰습니다. 정치에서 너무 힘을 뺏겨 다른 부분에서 힘을 쓸 수가 없었지요.

경제적 측면에서도 신자유주의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부 주도가 많았습니다. 정부조직을 키웠고., 예산도 계속 늘렸으며 규제도 많이 증가했습니다. 반기업, 반시장 정서도 팽배했습니다. 특히 균형발전정책 등은 결코 신자유주의 정책이라 할 수 없지요.

반면 한미 FTA체결, 법인세 인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라 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현 정부는 절대 시장을 믿지 않았습니다.

_선진국으로 진입한 아일랜드의 경우 개방을 통한 성장모델인지, 아니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동반성장인지 분석해주시지요.

나= 개방과 사회협약 두 가지 다 중요한데 무게중심은 개방에 있었을 것입니다. 한 쪽만으로는 어차피 안 되지만, 법인세율을 낮추고 외국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한 점이 중요합니다. 당시 유럽 투자는 거의 아일랜드로 갔습니다. IT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했고 거기에 더해서 사회협약을 했습니다. 사회협약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경제적 요인이 훨씬 중요합니다.

_외국 자본이 들어오려면 사회협약으로 사회가 안정될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결국 양쪽 학계에서 공유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들면 국가이론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신자유주의도 지속가능하려면 사회적 협약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일랜드입니다. 아일랜드는 외국 자본과 함께 우수한 인력의 역이민을 추진한 게 주효했습니다. 우리도 해외 우수인력이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개방 정책이 필요하는 한편 세계화 속에서 사회적 안정성이 확보되려면 사회협약이 필수적입니다. 이 두개는 맞물려 가야 지속가능한 세계화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_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노사정위원회가 잘 운영됐는데 나중에는 그게 안 됐습니다.

나= 노사정 협약은 일종의 대타협 시스템인데 실패 이유는 재벌보다는 오히려 노조에 있었습니다. 너무 정치적, 전투적이었습니다. 영국의 경우도 노조지도자가 바뀌니까 노사문화가 바뀌었습니다. 특히 노사정에서 정(政)이 빠져야 합니다. 노도 사도 정을 쳐다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보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주면 됩니다.

김=노사가 함께 변해야 합니다. 특히 사용자들이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데 노조와의 타협보다는 해외로 나가려고만 하는데 되겠습니까. 노사 양측이 반성해야 하고 타협을 매개하는 정부가 국민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_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짚어보지요. 처음에는 이명박 후보는 '747'정책으로 성장에 치우친 듯 했고 정동영 후보는 '20대 80'을 내세우면서 분배에 치우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 후보도 성장을 강조하고 이 후보도 양극화 해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 이 후보는 선진화에 가깝습니다. 정 후보는 원래 제3의 길에 가까운 실용주의자였는데 최근 전략적으로 좀 더 왼쪽으로 간 것 같아요. 신당 후보가 되고 나서 '20대 80' 등의 용어를 쓰면서 좌로 한 클릭 전략적으로 간 것 같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김= 후보들의 기반이 되는 사회세력의 성격을 봐야 합니다. 그렇게 봤을 때 이 후보 방식으로 가면 양극화 성장이 이뤄질 것입니다. 정동영 후보는 동반성장으로 가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으로 사람중심의 경제를 내세웠는데,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에 기초한 성장론으로 봅니다.

나= 이명박 후보가 되도 양극화가 강화될 것 같지 않습니다. 성장을 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빈곤층이 줄어듭니다. 그러면 세금이 더 걷히고 더 많은 세금으로 줄어든 빈곤층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성장만 하고 복지에 관심 없는 정부는 없지요.

김= (문 전 사장의)사람중심의 경제론은 사람과 사람의 협력관계를 토대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인적자원에 대한 집중투자를 통해 성장을 하자는 것입니다. 중소기업 중심론도 대기업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고 중소기업에 조금 더 중점을 두자는 것입니다.

정리=신재연기자 poet333@hk.co.kr사진=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 "선진국일수록 서민·빈곤층 적어""신자유주의식 성장 오래 못 가"

한국 사회의 방향을 놓고 보수와 진보의 접점은 없는가. 정권을 놓고 다투는 정치권과는 달리 담론의 세계에서는 분명 소통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 ‘선진화 vs 제3의 길’을 주제로 한 ‘시대정신’ 대기획의 두 번째 토론에서 성장과 경쟁력, 복지는 공통의 화두였다. 이를 포괄하고 관통하는 논리는 복지를 고려하는 성장, 성장을 중시하는 복지라는 신(新)성장론이자 신복지론이었다.

중도보수의 대표적 논객인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잠재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질 고령화 시대가 불과 10년밖에 안 남았다”면서 “모든 부분에서 선진화해야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경제적 선진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나 교수는 “선진국일수록 서민, 빈곤층이 적은 게 현실이고 선진화의 목표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성장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그러나 성장의 과정에서 생기는 빈곤층은 사회안전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진보 담론을 모색하는 좋은정책포럼의 공동대표인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성장과 경쟁력을 도외시한 채 진보의 가치를 실현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신자유주의 방식의 성장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지식투자 비중은 미국 스웨덴 핀란드에 이어 4위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지만 “반면 인적자원 개발이나 복지 등 사회투자는 멕시코 수준으로 낮다”고 지적했다.

복지정책에 대해선 두 토론자 모두 단순히 실업수당을 주는 방식으로는 안 되며 자립능력, 취업능력을 키워주는 학습복지 또는 생산적 복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공감대는 3자적 시각에서 도출한 것이고 당사자 사이에는 분명 시각차와 불신이 깔려 있었다. 나 교수는 ‘제3의 길’이 성장으로 포장한 분배론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피력했고, 김 교수는 선진화론이 소수를 위한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아일랜드가 개방과 성장, 그리고 사회적 대타협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에서, 이런 차이는 유능한 정부의 정책 운용에 따라 얼마든지 좁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성 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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