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 당시 김응용 삼성 감독(현 삼성 사장)은 6차전에서 9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한 뒤 적장인 김성근 감독에 대해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한국시리즈. 김성근 SK 감독은 23일 두산과의 2차전에서 초반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역전패를 당한 후 “투수 교체 타이밍을 놓친 게 가장 큰 패인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김응용 사장이 두려움을 나타냈던 ‘야구의 신’조차 마운드 운용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감독들은 경기를 치르는 동안 수 십번도 넘게 작전을 구상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은 투수 싸움에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 많은 작전 가운데서도 투수 교체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2년간 ‘지키는 야구’를 앞세워 한국시리즈 연속 우승을 차지한 선동열 삼성 감독은 “야구는 결과를 따지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 투수 교체가 가장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잘하면 절묘한 용병술이라는 극찬을 듣지만 실패로 끝나면 비난의 화살을 감수해야 한다. 칼날의 양면 같은 투수 교체의 세계를 살펴본다.
정답은 없다
투수 교체 타이밍에 대한 공식은 없다. 경기 상황과 타자의 유형, 상대 성적, 투수의 구위에 따라 교체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실전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때로는 선발 투수를 1회에 내릴 수도 있고, 마무리 투수를 7회에 투입할 수도 있다.
이번 가을잔치에서 투수 교체의 백미를 보여준 장면은 삼성과 한화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삼성이 1-0으로 앞선 6회초 수비 2사 2루에서 윤성환은 한화 4번 타자 김태균을 상대로 2-1의 유리한 볼카운트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선동열 감독은 이례적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중간에 윤성환을 사이드암 임창용으로 교체했다.
앞서 비록 파울이 되긴 했지만 김태균이 윤성환의 공에 타이밍을 맞추기 시작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규 시즌에서 김태균을 상대로 8타수 1피안타로 강했던 임창용은 결국 김태균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큰 것 한방이면 역전이 될 뻔한 상황에서 삼성은 초반 위기를 넘기고 6-0 완승을 거뒀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러나 삼성은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2패로 무릎을 꿇었다. 선 감독은 1차전 패배 후 “선발 브라운에게 너무 미련을 갖고 오래 끌고 간 게 패착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마지막 경기인 3차전에서는 반대로 선발 매존을 1회에 교체한 후 팀 불펜의 핵심인 안지만과 윤성환, 권혁을 5회 이전에 모두 투입하는 바람에 후반에 결승점을 내주며 패했다.
김성근 SK 감독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채병용을 너무 믿은 게 탈이었다. 채병용은 3-3 동점인 6회초 2사 2ㆍ3루에서 올시즌 4할2푼9리로 약했던 이대수에게 2타점짜리 결승타를 얻어 맏고 말았다. ‘데이터 야구’가 무색한 장면이었다.
반면 김경문 두산 감독은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뛰어난 마운드 운용술을 앞세워 스승 김인식 감독에게 완승을 거둔데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2연승을 달렸다. 지난 22일 1차전에서는 리오스를 뚝심 있게 9회까지 밀어붙여 SK 공격의 맥을 끊었고, 2차전에서도 6-3으로 쫓긴 6회 무사 1ㆍ2루 위기에서 과감히 고졸 신인 임태훈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워 승리를 지켰다. 공교롭게도 김성근 김인식 선동열 감독이 투수 출신인 반면 김경문 감독은 유일하게 포수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한편 두산과 SK는 25일 오후 6시 잠실 구장에서 벌어지는 3차전 선발투수로 각각 김명제와 로마노를 예고했다.
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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