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가면서 세계인의 식탁이 위협 받고 있다. 아프리카 등 식량 수입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 같은 수출국에서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전세계적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24일 보도했다. 식량 가격 급등은 사회 불안과 직결되기 때문에 식량 대란에 대비하는 각국 정부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식품 값만 고공행진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쏟아 내는 값싼 공산품에 힘입어 세계 소비자 물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안정세를 이어 왔다. 하지만 유독 식품가격만은 지난해부터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어 각국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 물가 지수(CPI)가 ‘체감 물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밀과 우유 가격은 이미 사상 최고치에 다다랐고 옥수수와 콩은 1990년대 평균치를 훌쩍 넘어섰다. 쌀과 커피 가격은 10년 만에 최고가로 상승했고 육류 가격은 일부 국가에서 최근 50%나 급등하는 ‘대란’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앞으로 10년 동안 농수산물 가격이 과거 10년 평균 가격보다 20~50% 가량이나 급등할 것으로 예상한다.
아시아로부터의 수요 급증과 바이오 연료 권장 정책 등이 식품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제시된다. 경제 성장으로 보다 부유해진 중국인과 인도인들이 더 풍족한 식탁을 원하기 시작했고, 올해 생산된 미국의 옥수수의 25%가 알코올 연료로 만들어졌다.
반면 일부 경제학자들은 선진국의 농업 보조금 지급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유럽과 미국이 자국 농민들에게 과도한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다른 나라 농민들의 경쟁력이 떨어졌고, 결과적으로 이들 국가의 비효율적 과점이 계속되면서 농업 부문의 생산성 향상 노력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각국 ‘식량 안보’ 확보 나서
올해 여름, 밀 수요의 반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이탈리아 국민들은 파스타와 빵, 우유 가격 상승에 항의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연초 멕시코에서도 옥수수로 만든 또띠야 가격이 크게 오른 데 항의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정부는 또띠야 가격 상한선을 정해 성난 민심을 달랬다.
1977년 정부가 빵 가격을 올리자 ‘빵 폭동’이 일어났던 이집트 정부는 과거의 경험을 거울 삼아 밀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낮은 가격에 빵을 공급할 수 있도록 지난달 제빵업자들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늘렸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앞으로 식품 가격이 더 오를 것에 대비해 비축량을 늘리려고 필요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수입하고 있다.
아프리카처럼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하는 저개발 국가의 경우, 정부가 가격 급등과 보조금 지급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식량을 자급하거나 수출하는 나라도 위기를 느끼긴 마찬가지다. 최근 식품 가격 상승에 큰 우려를 표명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연말 총선을 앞두고 민심 동요를 우려한 듯 자국 내 최대 식품 유통업체 및 생산자들과 기초 식품 가격을 통제하기로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 내 공급량을 확보하기 위해 옥수수와 보리, 밀의 수출량을 제한할 것을 고려 중이다. 유럽연합(EU)은 곡물 과잉 공급을 우려해 농지의 10%를 묶어두었던 특별보호구역을 해제했다. 영국도 지난해 12월 정부 보고서에서 식품 안보에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해묵은 ‘식량 안보’가 다시금 각 국가들의 지상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케이트 베일리 연구원은 “정책 입안자들이 식량을 ‘전략적 자산’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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