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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리기 1400년 만에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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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리기 1400년 만에 햇빛

입력
2007.10.2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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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백제 왕흥사 목탑터에서 사찰 창건 연도와 목적 등의 명문이 새겨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기(舍利器)가 발견됐다. 백제 금동대향로 이래 최대의 발굴 성과로, 신라에 비해 문헌 자료가 크게 부족한 백제사 연구에 획기적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24일 “제8차 왕흥사지 발굴조사 결과, 금ㆍ은ㆍ동의 사리함 세트와 탑에 넣은 공양품인 옥구슬, 금실, 동전 등 각종 귀금속 및 장신구, 백마강변에 배를 대고 사찰 안으로 들어가는 왕의 행차로인 어도(御道)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리기 안에서 사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완벽한 원형보존 상태로 발견된 사리기는 가장 큰 청동의 사리함(폭 7.9㎝, 높이 10.3㎝)에 그보다 작은 은제 사리병을 넣고, 실제 사리를 담은 가장 작은 금제 사리병을 그 안에 다시 집어넣는 세 겹 중첩형식이다. 명문은 청동 사리함의 외벽에 음각체로 ‘정유년 2월 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절을 세우고 본래 사리 두 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丁酉年二月/十五日百濟/王昌爲亡王/子立刹本舍/利二枚葬時/神化爲三)’라고 새겨져 있다.

이에 따라 왕흥사의 실제 축조연대는 법왕 2년(서기 600년)에 축조돼 무왕 35년(634년)에 낙성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보다 최소 23년 앞선 위덕왕(창왕) 24년(577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왕흥사가 위덕왕의 선왕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진 절이라는 학계의 일반적인 추론과 달리 죽은 아들을 위해 만든 절임이 밝혀졌으며, 위덕왕이 597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아좌(阿佐)태자 이외에 또 다른 왕자를 두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부여=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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