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진실위는 24일 김대중 납치 사건 최종 조사결과 발표에서 중앙정보부가 납치를 계획하고 주도했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는 명쾌히 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계속 논란거리로 남게 됐다.
진실위는 전직 중정직원들과 용금호(김 전 대통령을 일본 오사카에서 부산으로 나른 배) 선원 면담 조사, 각종 국정원 존안 자료 조사 등을 통해 중정의 납치 주도를 명백히 밝혀냈다.
김 전 대통령이 1973년 7월 10일 미국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직후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이 이철희 정보차장보에게 납치 공작을 지시했고, 이에 대한 이 차장보의 진술도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 납치 계획을 담은 ‘KT공작 계획’이 작성됐다는 점도 밝혀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직접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정황을 들어 박 전 대통령의 사전 지시 가능성 및 묵시적 승인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진실위는 그 정황으로 ▦이 부장이 이 차장보의 반대에 부딪히자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라고 했던 점 ▦현지 공작 책임자였던 김모 주일 대사관 공사가 “박 대통령의 결재를 확인하기 전에는 공작을 수행하지 않겠다”고 버티다 곧 적극 협조 한 점 ▦박 전 대통령이 사건 발생 후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보호한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황이다.
진실위는 이 부장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었다면 ‘과잉충성’이었을 수 있다는 추정도 같이 내놓았다. 이 부장이 박 전 대통령의 정적이자 반유신 활동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을 납치해 당시 ‘윤필용 사건’(당시 윤 수경사령관이 술자리에서 박 대통령 후계자로 이 부장을 거론해 처벌 된 사건)으로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려 했다는 것이다.
납치의 목적이 살해였냐, 단순 납치였냐는 부분에 대해 진실위는 단순 납치 쪽에 무게를 뒀다. 진실위는 “애초 암살 계획이었으나 중도에 상황 변화로 단순 납치로 변경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호텔에서 납치한 이후에는 단순 납치 계획이 확정돼 실행됐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진실위는 또 당시 정부의 조직적 은폐의혹을 지적하며, “한국 정부는 물론, 일본 정부도 진상 은폐에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KAL858기 폭파 사건과 관련해서는 진실위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작ㆍ기획은 없었다고 정식으로 확인한 데 의의가 있다. 북한이 벌인 일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을 불식시킨 셈이다.
다만 진실위는 “당시 안기부는 대선을 앞두고 이 사건을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선거전에 범인 김현희씨를 압송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정부의 정치적 이용을 꼬집었다.
한편 이날 3년 간의 조사를 끝낸 진실위 활동에 대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평가와 함께 “자료 부족과 강제 조사권이 없는 등의 이유로 한계가 많았다”는 지적이 함께 나왔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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