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장의 깃발이었으나 위용은 당당했다. 가로ㆍ세로 각각 4m가 넘는 단순한 형태의 '帥'(수)자 대형 깃발이었다. 해병대 지휘관들은 깃발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경례하는 군인들의 얼굴엔 나라를 지키다 순직한 선열과 선배들에 대한 경건한 추모의 마음과, 강고한 국방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엄숙한 각오가 스치는 듯했다.
신미양요 때 빼앗긴 어재연 장군기가 136년 만에 돌아와 22일 환영식이 열렸다. 조선군은 1871년 강화도 광성진에서 로저스 제독의 미 해군과 전투를 벌여 처참하게 패했다.
조선군 사망자는 어재연 장군과 아우 어재순 등 350여 명이었고, 미군 전사자는 3명에 불과했다. 조선군은 화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으나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고, 분하게도 장군기마저 빼앗겼다. 장수기는 전리품이 되어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수장되었다.
장수기는 문화재청이 10여 년의 반환운동 끝에 미 해사박물관과 장기대여 협정을 맺음에 따라, 10년간 국내 박물관 등에서 일반에게 공개된다.
삼베로 된 이 장수기는 강대국의 제국주의가 세계를 요리하던 구한말 약소국 조선의 풍전등화같던 운명을 우리에게 아프게 상기시켜 주고, 새삼 국력이 강성해야 함을 깨우쳐 주게 될 것이다. 언젠가 장수기를 완전히 돌려 받는 날이 올 테지만, 아직은 장기 대여인 점은 애석하다.
그러나 장군기 귀환은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이보다 5년 전인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문서의 반환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프랑스는 등가등량(等價等量) 교환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대신 프랑스가 전시공간을 제공하면 다른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재를 임대해 줘서, 세계 속에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번 어재연 장수기 귀환이 프랑스와의 문화재 반환협상을 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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