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 1호
십삼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적당하오.)
제일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이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삼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사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오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육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칠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팔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구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십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십일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십이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십삼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십삼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러케뿐이모혓소.(다른사정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중에일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좃소.
그중에이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좃소.
그중에이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좃소.
그중에일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좃소.
(길은뚫닌골목이라도적당하오.)
십삼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야도좃소.
출처: <정본 이상 문학전집 1> , 소명출판, 2005 정본>
◆약력
▦1910년 서울 출생. 본명 김해경(金海卿) ▦보성고보, 경성공고 졸업 ▦1931년 <조선과 건축> 에 ‘이상한 가역반응’ 등 시 2편 발표하며 등단 ▦1932년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이상(李箱)이란 이름으로 첫 발표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 연재하다가 독자 항의로 중단 ▦1936년 <조광(朝光)> 에 소설 <날개> 발표. 그해 <동해(童骸)> <봉별기(逢別記)> 등 발표 ▦1937년 도쿄대 부속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사망 ▦1957년 <이상 전집> 3권 간행 이상> 봉별기(逢別記)> 동해(童骸)> 날개> 조광(朝光)> 오감도> 조선과>
◆해설
이상은 1934년 7월 24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烏瞰圖)> 연작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무슨 개수작이냐’는 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보름 만에 중단해야 했다. 오감도(烏瞰圖)>
이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상의 시는 어릴 적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해서 누구나 이 얘기를 한 두 어 번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일반 독자의 반응과는 다르게 한국의 지식인 독자들은 이상의 시를 소중히 보듬고 아끼고 세상에 퍼뜨리는 일을 기꺼이 해야 할 일로 삼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당시 편집국장이던 이태준이 사표를 품에 넣고 연재를 강행했던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일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아마도 이상의 시 안에, 닳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 이상이 현대의 문턱에 살았으면서도 오늘날의 사람들보다도 더 현대적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현대적 삶의 ‘의미’를 가장 먼저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끼고 현대를 그리는 데 극단까지 가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겨우 현대의 문턱에 살았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의 천재 건축가였지만 오늘날의 문명의 모습을 미리 알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혈청의 원가상환을 강청’하는 과거가 그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현대를 추구하되 현대의 내용을 담지 못하고 현대의 축약된 형식만을 제시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해독불가능한 난해성의 상태로 떨어지곤 하였다.
그러나 바로 같은 이유로, 그의 시는 독자들이 그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할 빈 용기와도 같은 것으로 제시되었다. 어느 시보다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인이 거기에 있었고, 그 뜻을 전혀 모르면서도 누구나 한 두 행은 외울 수 있는 시가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오감도 1’ 역시 이질적인 해석들로 들끓는다. 특히 첫 행, ‘13인의 아해가 질주하오.’에서의 ‘13인’에 대해 ‘예수와 12제자’라는 해석에서부터 당시 조선의 13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추정에 이르기까지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속출한다. 요즈음의 독자라면 숫자에 관계없이 폭주족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또는 모종의 이유로 도주하는 도망자들을. 이 시의 힘은 바로 이렇게 해석의 행진을 멈추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검게 덧칠된 듯 알 수 없는 현대의 삶 속으로 불안과 호기심에 이끌려 참여케 된다. 그리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는 독자의 ‘구성적 참여’를 통해서 완성된다.
현대의 이상적 방향이 주체의 권리와 능력의 무한대로의 확장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상시의 이런 형식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시든 완미한 형태를 꿈꾼다. 그러나 영원한 미완이 완미함의 필수조건이 될 줄은 이상시가 최초로 보여준 것이다.
정과리(문학평론가ㆍ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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