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이 1941년 10월 22일 나치에 의해 처형당한 17세의 청년 공산당원 기 모케의 추모를 둘러싸고 한바탕 논쟁을 벌이고있다.
사건의 발단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5월 16일 취임식 후 첫 업무 지시로 모케의 편지를 매년 10월 22일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낭독하도록 한 데서 시작됐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공산주의 전단을 나누어주다 나치에 잡혀 처형된 모케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17년 반의 내 삶은 짧았지만 후회는 조금도 없다", "마지막으로 부탁건대, 이제 곧 처형대로 가는 27명의 죽음을 오래도록 간직해 달라"고 썼다.
사르코지식 '감동 이벤트'를 기획한 셈이지만 사회당과 공산당 등은 즉각 "공산주의자의 상징을 훔쳐갔다"고 반발했다. 추모일인 22일을 전후해 이 같은 논쟁은 더욱 후끈 달아올랐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과 전직 레지스탕스 대원들, 역사가들, 정치가들과 10명의 장관들이 수백 개의 추모 행사, 토론회 등에 참가해 좌우로 나뉘어 싸웠다.
모케의 어릴 적 친구인 오데트 닐(83)은 <르 파리지엥> 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걱정하는 것은 기 모케의 편지를 낭독해야 한다고 강요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르>
반면 전직 레지스탕스였던 레이몽 오브라크(92) 등은 "과거의 역사에 대해 젊은 세대의 관심을 이끌어냈다"며 사르코지 대통령의 제안을 지지했다.
22일 당일에는 고등학교가 시끄러운 싸움터로 변했다. 파리 교외의 한 학교를 방문한 법무부 장관 라시다 다티는 "기 모케를 자유롭게 하라" "인종 차별적 법에 맞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하자" 라고 외치는 시위대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일부 학교들은 불법 이민자 추방에 저항하는 시민 운동가들의 초청 강연을 실시했다.
심지어 사르코지 대통령이 방문할 예정이었던 모케의 모교에서는 학생들이 반대 시위까지 벌였고, 결국 사르코지 대통령은 다른 이유를 들어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모케를 서로 자신의 상징이라 주장하는 논쟁과는 별도로 일부 역사학자들은 모케가 레지스탕스의 상징이 된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모케가 사망한 41년에 프랑스 공산당은 나치와 소비에트 간 협약 때문에 반 나치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 당시 모케는 공산당 전단을 나눠주다 검거됐으니 '공산주의자'로서 처형 당한 것은 맞지만 '나치의 점령에 대항한 레지스탕스'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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