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황창규 반도체 총괄사장에게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반도체 가격추락, 전례없는 정전사고 등 연초부터 계속된 악재의 연속으로 입지마저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던 황 사장이지만, 하반기 들어 3분기 '깜짝 실적'발표에 이어 이번에 '황의 법칙'까지 입증해보임에 따라 건재를 다시 한번 과시하게 됐다.
삼성전자가 23일 '30나노 64기가 낸드플래시' 반도체 개발을 발표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삼성전자로선 세계반도체 시장의 리더임을 확인한 기술적 개가였고, 동시에 황 사장 개인에겐 '황의 법칙'을 8년째 입증하는 성과였던 것이다.
물론 발표시기는 예년에 비해 한달 정도 늦어졌다. 하지만 삼성전자측은 내부적 판단에 따라 발표시기를 조율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이미 기술개발을 해놓고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창조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격찬한 CTF(전하를 도체가 아닌 부도체에 저장하는 기술)에다, 신기술(SaDPT)을 접목시킴으로써 오히려 차세대 30나노를 넘어 차차세대급인 20나노급까지 적용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룩해냈다.
하지만 낭보를 전하는 발표회장에 주인공인 황 사장은 없었다. 전준영 상무가 발표를 대신했다. 지난해 서울 신라호텔에서 화려한 조명속에 직접 '황의 법칙' 실현을 발표하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시황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황의 법칙' 입증발표로 황 사장 개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부담스러워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황 사장은 앞으로는 실적으로만 말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공식 발표가 끝난 뒤 이어진 오찬자리에 황 사장은 얼굴을 나타냈다. 황 사장은 이번 발표의 의미에 대해 "애써 개발한 기술로 낸드플래시 시장의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며 "신기술, 신제품, 신시장을 어떻게 만들어나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며, 또 만든 시장을 잘 성숙시켜 나가는 데 포커스를 두고 있다" 고 말했다.
사실 황 사장은 올 한해 '지옥을 다녀왔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연초부터 급락하기 시작한 D램 가격으로 2분기 반도체 영업이익이 사상 최악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삼성 위기론'의 빌미가 됐다.
지난 7월에는 기흥 반도체 공장에는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까지 발생해 '첨단 공장의 원시사고'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다. 황 사장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반도체 수율(생산성) 불량을 이유로 질책을 받았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업계에선 "황 사장도 이젠 힘든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황 사장은 경기도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칩거하면서 반전을 노렸다. 비장의 카드로 준비해 온 모바일D램, 그래픽D램 등 차별화된 제품을 앞세워 3분기 9,2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극적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이번 '황의 법칙'입증으로 결국 '부활'하게 됐다.
황 사장은 3분기 실적 발표한 뒤 올해 당초 계획보다 투자를 1조4,000억원이나 늘렸다. 공급과잉으로 '시장'을 흔드는 대만 등 후발 경쟁자들을 고사시키기 위한 승부수를 빼든 것이다. 황의 법칙으로 다시 탄력을 받은 그의 도전이 주목되는 이유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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