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인이 있다. 윌리 스탁(숀 펜). 미국 메이슨 시티의 재정관으로 학교건설입찰비리와 부실공사를 고발해 유명해지자, 내친김에 루이지애나 주지사에 출마한다.
돈도, 조직도 없는 촌뜨기. 그러나 그에게는 ‘말 잘하는’ 혀가 있다. 모든 공식을 버리고, 평소대로, 거침없고 자극적인 혀로, 그는 “부패한 기성 정치인을 처단하겠다”고 외친다. “부자들 돈 왕창 빼앗아 도로, 다리를 건설하고 누구나 갈 수 있는 대학과 무료병원을 세워 골고루 잘사는 새로운 ‘시민들을 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이 지극히 이분법적인 논리에 집착한 공약과 유력 후보의 야비한 선거전략 폭로, 순진한 촌뜨기 이미지 메이킹, “투표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무식한 촌뜨기가 되는 겁니다. 그래도 싸기 때문이죠”라는 다분히 자존심을 자극하는 연설. 윌리는 당당하게 주지사에 당선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과 자신감에 가득찬 개혁 이상주의자 윌리. 그러나 그의 개혁실현은 시작부터 벽에 부딪친다. 부자들은 그의 정책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석유회사와 전력회사는 세금폭탄에 저항한다.
그럴수록 더욱 그들에게 적대감을 보이며 자신의 생각을 밀어 부치는 윌리. 두 가지 무기를 사용한다. 하나는 특기인 대중 선동이고, 또 하나는 그토록 처단하자고 외치던 부패하고 야비한 권력.
가난한 자가 돈 맛에 취하면 헤어나오지 못하듯, 그는 궤변으로 권력을 개인의 달콤한 욕망에 사용하고, 자기 논리를 위해 헌법까지도 지옥으로 날려버리려 한다. 임금지급 비리로 의회의 탄핵이 시작되자 판사출신 의원(안소니 홉킨스)에게 “양심 같은 단어를 당당하게 쓰기에는 정치판에서 너무 노셨지”라고 협박하고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자 몰래 뒷조사를 시키는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말 ‘잘하는’ ‘함부로 하는’ 정치인은 거리로 나가 이렇게 소리친다. “맞아요, 조금 먹었습니다. 기름도 한 통 받았죠. 인간이 만든 기계 중에 기름 한 두 방울 안쳐도 계속 잘 돌아가는 그런 기계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비리는 비리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액수죠. 그들의 무지막지한 부정과 비교해 보십시오. 게다가 저는 제 문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비리를 솔직히 털어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자들(보수세력)이 나를 파멸시키려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파멸시키고 싶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여러분의 의지가 저의 힘이 됩니다. 여러분이 필요한 것은 나의 정의입니다. 나는 당하지 않겠습니다.”
교묘한 언변과 포퓰리즘, 정치공작으로 탄핵은 부결되지만, 스티븐 자일리언 감독의 <올 더 킹즈 맨> (11월3일 개봉)의 주인공 윌리는 결국 주변인물의 오해와 모함으로 비극을 맞는다. 올>
1946년 퓰리쳐상을 받은 로버트 펜 워렌의 동명소설로는 1949년 로버트 로센 감독에 이어 두 번째인 이 영화는 시대배경이 70년 전이고, 무대 역시 먼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고 섬뜩하다.
<시민 케인>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 에 버금가는 시대를 뛰어넘는 정치영화 ‘고전’의 힘 덕분인지, 정치판과 정치인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역시 일 보다는 말을 더 잘하고 또 함부로 하는 지도자와 지금 살고있기 때문인지. 스미스> 시민>
문화대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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