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뉴욕의 소호 거리를 걷다가 백남준 선생을 처음 뵈었죠. 유아처럼 천진난만한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그 인연이 이번 쇼를 있게 한 것 같아요. 선생님 작품처럼 재미있고 생동하는 느낌을 옷에 담고 싶네요.”
디자이너 지춘희(사진)씨가 지난해 작고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추모하는 대규모 패션쇼를 27일 서울 여의도 KBS전시장에서 연다. KBS가 주최한 <백남준의 비디오 광시곡> 전시회 특별 초청행사이자 진씨의 2008 봄여름 컬렉션을 겸한 무대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패션의 만남’을 주제로 펼쳐지는 행사는 평소 팝아트 마니아로 알려져 있지만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명확히 해온 지씨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도전이다. 지씨는 “세계적인 대가를 회고하는 자리인 만큼 선생의 작품에 넘치는 색채와 생기, 유머 감각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예술과 패션의 교류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에요. 예술로서의 옷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옷은 (몸에)입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이기 전에 합리적으로 제작돼야 한다는 뜻이지요. 느낌은 백남준, 풀어내는 방식은 패션의 논리에 맞는 지점을 찾다가 문득 ‘예술은 놀이’라고 했던 선생님처럼 나도 힘 빼고 즐겁게 몰입해 보자 생각했더니 좀 쉬워지더군요.”
패션쇼는 크게 두 개의 모티프를 통해 구성된다. 백남준 작품의 화려한 색상에서 영감을 얻은 앵무새가 하나다. 빨강 노랑 녹색 등 화려한 원색에 푹 빠진 채 발랄하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살린다.
두 번째는 인체의 실루엣을 통해 비디오 아트가 보여주는 시각적 리듬감을 자유분방하게 표출하는 것이다. 달걀 형태의 코쿤(cocoon) 스타일, 과감한 주름, 비대칭 형태 등 다양한 실험이 시도된다. 한혜진 장윤주 등 톱모델들이 모두 120여벌을 선보인다.
지씨는 “지난 3년간 지춘희미스지콜렉션 사옥 리뉴얼작업으로 인해 본업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이번 행사를 디자이너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일에 매진하는 신호탄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지씨는 연말까지 자체 브랜드 미스지콜렉션에 스포츠웨어 라인을 추가하며 11월 7일에는 본사에서 수입자동차 브랜드 재규어 후원으로 패션쇼를 갖는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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