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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M)' 개봉 앞둔 이명세 감독 "영화의 모국어는 이미지 왜들 이야기에 집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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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M)' 개봉 앞둔 이명세 감독 "영화의 모국어는 이미지 왜들 이야기에 집착할까"

입력
2007.10.2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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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봤지?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 난 내가 모국어로 마지막 수업을 하는 선생 같아.”

줄담배였다. <엠(m)> 의 개봉(25일)을 앞둔 이명세(50) 감독의 얼굴엔 갑갑함이 뭉쳐 있었다. 단순히 흥행에 대한 압박감은 아니었다. 자신의 영화가 오독된다고 느꼈는지, 감독은 유독 ‘모국어’라는 단어를 반복해 썼다. 기자의 이름 끝에 ‘형’자를 붙여 부르며 쏟아 놓는 얘기는 템포가 다소 격했다. 그의 영화처럼, 그의 말도 채도가 짙은 이미지와 이미지로 이어졌다.

“한국사람이니까 한국말을 쓰고 싶은 것처럼, 영화를 찍는 감독이니까 영화의 모국어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야. 영화의 모국어가 뭐야? 바로 비주얼, 시각적 이미지 아냐? 근데 다들 나보고 ‘왜 그렇게 이야기의 비중을 죽이냐’고 말하니까 답답한 거지.”

이명세 감독의 이름 앞에는 늘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그는 “의미가 뭐냐”는 질문을 싫어한다. 영화에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과 이미지”. 하지만 ‘이야기’를 중요시하는 한국의 영화 풍토에서, ‘비주얼’에 집착하는 감독의 자리는 늘 변방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0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년) 등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전도된 주객’의 피해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미술도 발전하고, 음악도 발전하고… 그런데 영화만 1970년대에서 정체해 버린 거야. 영화가 그림책이야? 이야기를 그림으로 찍어내게. 근데 어느 순간부터 텍스트 속에 빠져 버리고, 평론가들도 그 관점에서만 영화를 평가하고…. 뭔가 좀 스펙트럼이 넓어져야 하지 않겠어?”

내러티브에서 오는 논리적 구조보다 이미지가 주는 즉물적 감성을 추구하는 이명세의 영화어법은 <형사> (2005년)에서 어떤 극점을 보여준 다음, 이번 영화에서 한층 더 깊어졌다. 디스크자키가 LP판을 긁어대듯 영화의 앞과 뒤고 복잡하게 교차되고,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작품을 보듯 몽환적 이미지가 거울 속에 무한히 중첩돼 나타난다. 그리고 어두운 보랏빛의 현실과 순백의 파스텔톤 꿈의 세계가 이루는 극단의 콘트라스트(명도대비). <엠(m)> 의 카메라워크를 따라가다 보면,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진다.

“정확하게 봤네. 리듬이야. 바로 그것만 느끼면 돼. <인정사정…> , <형사> 에서는 주인공의 행동 자체가 동적이었지만, <엠(m)> 의 주인공은 직업이 소설가잖아. 정적이지. 그래서 동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대사에 리듬감을 줬지. 똑 같은 말을 번갈아 가며 되풀이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듯 성량의 부피가 변화하고…. 이미지화라는 점에서는 칼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그러나 개별 신(scene)의 이미지 총합이 하나의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란한 이미지들을 널기에, 줄이 되는 시나리오가 너무 헐겁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따라서 <엠(m)> 에서 느껴지는 몽롱함과 리듬감은,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처럼 물리적인 쾌감이 아니라 독한 담배를 피웠을 때와 같은 어지러움에 가깝다. 좀 더 팽팽하게 그 줄을 조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시나리오를 써 오면서 한국영화의 기존 방식을 따른 적이 없어. 늘 사람들이 갖는 고정관념을 깨주고 싶었지.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도 액션영화처럼 둘의 대결로 시작되고…. 이번 영화는 꿈이라는 플롯이 들어왔기 때문에 좀 더 널뛰기가 자유로웠지. 주인공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함께 혼돈 속으로 뛰어 들게끔 만들고 싶었어.”

이명세 감독의 역설은 지극히 ‘스타일리쉬’한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푸근한 ‘무엇’. 그의 영화는 충격이지만, 그 충격은 낯섦보다는 오히려 복고적인 이미지로 남을 때가 많다. “그렇지.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내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하데. 뭔가 통하는 유전자가 있는 건지…. 사실, 나는 니힐리스트인데 말야. 음… 아마 내가 가장 원형적인 것들을 영화로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살면서 한 번씩 거치는 그 무엇. 첫사랑도 그렇고. 영화는 어차피 사람에 관한 작업이니까, 사람을 좇아갈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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