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의 경쟁력은 선진화로 축적된 서비스 노하우에 있지만 앞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최근 국내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사들의 해외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더 이상의 성장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해외 금융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외환위기 이후 자산규모가 반 토막이 된 인도네시아의 한 시중은행 인수를 추진했다가 정부의 규제에 묶여 좌절된 것을 아직도 아쉬워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도 해외진출에 대해 관심은 어느 때보다도 높지만 성공여부에 대해선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다. 22일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사인 맥킨지의 도미니크 바튼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을 만나 아시아 권의 금융업 현황과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외환위기 당시 국민은행 등 시중 은행들의 구조조정과 정부로부터 금감원 설립에 대한 연구용역을 '싹슬이'했던 바튼 회장은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크다. 그런 그가 한국 금융기관들의 해외진출에 대해선 다소 조심스럽다.
바튼 회장은 이를 위해선 우선 야심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턱없는 야심은 금물이다. 하지만 역내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합리적인 야심'이 필요하다는 애기다.
바튼 회장은 "아시아 역내에 아직 금융거물(Big Player)이 없다"며 "싱가포르에 일부 사례가 있고 HSBC나 스탠다드차터드 은행이 있지만 순수한 아시아 은행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유럽에서도 역내 거물이 등장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이탈리아의 유닛크레딧은행은 규모는 작지만 9개 유럽국가에 진출했고 BNP파리바은행도 유럽의 거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시아의 금융시장 상황이 90년대 초반 유럽과 유사하다"며 "해외진출을 가로막는 장벽은 존재하지만 아시아 내부에도 기회가 많아 굳이 아시아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장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다른 장벽으로 '리더십의 부재'를 꼽았다. 그는 "한국 은행들은 해외진출 이후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과 인수한 현지은행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 하는데 두려움이 크다"면서 "사실 은행 인수합병의 3분의 2는 생각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역내 금융거물이 되기 위해선 7가지 점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야망이다. 이미 세계적 거물이 된 기관을 보면 대표이사가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꿈과 야망이 있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목표가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중요하다. 또 회사의 장점과 경쟁력 우위가 어디 있는 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여기에 리더십을 갖고 있는 경영진은 필수다. 그는 "M&A를 한번하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면서 "한국의 금융기관 중 다수가 역내에서 또 세계에서 거물이 될 자격이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금융기관이 공격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지 않을 경우 금융업에서도 '샌드위치 위기'가 불가피하다"며 "세계로 진출해야 하지만 아직 내부적으로 높은 장벽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바튼 회장은 "이미 과거 500대 은행의 반 이상이 사라졌고 또 다시 반이 인수합병을 통해 사라질 것"이라며 "이미 일부 아시아 주자들이 부상해 전세계 톱10은행 중 3곳이 중국은행이며 앞으로 인도은행이 급부상하고 일본 은행도 컴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전세계 은행권 수익의 15%가 아시아 은행의 비중"이라며 "이 수치는 조만간 24%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은행권은 아시아 지역에서 자본시장과 무역 관련 서비스를 통해 가장 큰 성장을 이룰 것"이라며 "8억 명의 아시아인이 중산층으로 10년 내에 부상하게 되면 세계 유수 기업이 아시아기업이 될 것이고, 중동과 아시아의 교류도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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