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년간 공정거래위원회 고위직 퇴직자중 75%가 사실상 업무연관이 있는 법무법인(로펌)이나 대기업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직자들의 로펌 취업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따갑다.
국회 정무위 박상돈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22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2003년 이후 공정위에서 퇴직한 4급 이상 직원 33명중 25명이 법무법인이나 대기업 등 영리법인에 재취업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 퇴직자중 퇴직 후 2년 내에 재취업한 사람은 94%인 31명이었다. 이중 3명이 퇴직 직후 취업했고, 1개월 내에 취업한 사람도 20명에 달했다.
김정훈 의원(한나라당)도 2005∼2006년 공정위를 퇴직하고 민간에 취업한 4급이상 22명중 절반인 11명이 법무법인으로 이동했으며, 이중에는 부위원장 2명과 상임위원 3명, 사무처장 1명, 4급 5명 등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는 공직자(일반직은 4급 이상, 조세 업무 등은 7급 이상)는 퇴직한 후 2년 동안 재직 중 업무와 관련이 있는 영리목적의 사기업에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업무 관련 법인'은 자본금 50억원 이상이다. 그러나 국내 로펌 중에는 자본금 50억원 이상인 곳이 한 곳도 없어, 공직자가 로펌에 취업하는 데는 아무런 제도적 제한이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로펌은 공정위 업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로펌에 취업한 공정위 퇴직자들은 대부분 재직 당시 ▦기업들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판정하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업무나 ▦공정위와 기업간 소송을 처리하는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맡아왔다.
김 의원에 따르면 2002년 이후 공정위 소송 대리인 상위 10개 법무법인 중 김&장, 율촌, 세종, 광장 등을 비롯한 7개의 법무법인에서 공정위 관련된 직원이 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의 승소율은 최고 33%에 이르렀다.
김 의원은 국감에서 "지난 2001년~2006년 10월 중 퇴직한 4급 이상 공무원의 민간 취업을 조사한 참여연대의 자료에 따르면 로펌에 채용된 공무원 출신은 34명인데 이 중 공정위 출신이 12명으로 가장 많았다"며 "공정위 관련 사건에서는 공정위의 조사 기법과 논리, 인맥을 잘 아는 공정위 출신들이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공정위 퇴직자들이 공정위 상대 소송에 실질적으로 관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퇴직공직자의 로펌행(行)은 공정위 뿐 아니라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다른 경제부처에도 만연해 있다. 실제로 국내 최대 로펌격인 김&장에는 전직 장ㆍ차관급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있으며, 특히 법률자문수요가 많은 세무분야에는 국ㆍ과장급 실무관료 출신들도 일하고 있다.
한 정부관계자는 "법과 규정을 만들었던 공무원이라면 그 허점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퇴직 후 법무법인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이 만든 규정의 허점을 자신이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경제부처 퇴직자들은 퇴직 전 3년 내 근무부서만 재취업 연관성을 따지는 현행법을 피하기 위해 퇴직 3년 전부터 연수기관 등 금융감독업무와 관련 없는 부서에 근무하는 일종의 '경력 세탁' 등을 통해 공직자윤리법 관련조항을 피하기도 한다"며 "허술한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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