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의미에서 오페라의 주인공은 소프라노다. 주역 소프라노는 헌신적이고 희생을 감내하는 고결한 여인이며 감동의 원천이어야 한다. 그런 소프라노가 사랑하는 상대의 90% 이상은 테너다. 비록 제1의 주역은 소프라노에게 넘겼지만 어깨가 으쓱할 법하다.
그런데 테너에게 주어진 캐릭터를 잘 살펴보라. 소프라노의 사랑을 얻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온통 약점투성이 남성상이다. 대개 어른스럽지 못한 남자로 그려져 있는 데다가 젊은 혈기를 앞세울 뿐 멍청한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소프라노에게 비극을 초래한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발견된다.
도니체티의 <루치아> 에서 에드가르도는 전후사정을 제대로 묻지도 않은 채 파탄의 모든 책임을 루치아에게 돌리고, 벨리니의 <노르마> 에서 폴리오네는 오랜 연인의 시녀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일을 그르친다. 베르디보다 늦은 시기에 활동한 푸치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르마> 루치아>
<나비부인> 의 미국장교 핑커톤은 사려 깊지 못한 남자를 대표하며, <투란도트> 의 칼라프 왕자는 영웅적으로 사랑을 쟁취하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도박의 연속이나 다름없을 뿐 아니라 자신을 사모한 불쌍한 여인을 희생시킨다. 투란도트> 나비부인>
도니체티와 벨리니를 계승한 베르디도 처음엔 비슷했다. <리골레토> 의 만토바 공작은 천하의 난봉꾼이며, <일 트로바토레> 의 만리코는 혈기만으로 모친을 구출하려다 자신은 물론 연인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일>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의 비올레타가 더욱 비극적인 것은 알프레도의 어리석은 복수가 관객들의 마음을 후벼 파기 때문이다. 베르디가 이런 도식을 벗어나는 건 46세 때인 1859년 작곡한 <가면무도회> 부터다. 가면무도회> 라>
주역 테너는 불륜의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고귀한 행동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여인을 구원한다. 남자가 죽고 여자가 사는, 그러나 그 덕분에 성숙한 테너가 탄생하는 오페라가 <가면무도회> 다. 가면무도회>
베르디의 후기 오페라에 묵직한 감동이 배어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면무도회> 이후 ‘제대로 고뇌하는’ 캐릭터를 테너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리라. 가면무도회>
서울시오페라단이 11월 1일부터 나흘간 세종문화회관에 <가면무도회> 를 올린다. 이번 무대는 이 오페라단의 원칙대로 전통에 입각한 연출을 고수한다. 가면무도회>
옛 유럽의 귀족 가발을 쓴 가수들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신 경향 연출의 큰 물결 속에서 누군가는 보수적인 전통도 지켜야 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려면 왕성한 실험 정신뿐 아니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도 필요한 것이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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