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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받기만 해서야

입력
2007.10.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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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살지 않겠어. 정의롭고 양심적으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겠어."

20대 초반의 우리는 기성세대를 흉보고 손가락질했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비겁하며 현실 순응적이었다. 우리는 센 사람 앞에서, 돈 앞에서 무기력한 그들이 싫었다.

그런 우리가 어느덧 기성세대가 됐다. 우리의 지금 모습은 어떨까.

돌아보면 40대 중반의 우리는 사회적 혜택과 기회를 참 많이 누렸다. 그때도 가난 때문에 혹은 다른 개인적 이유로 대학 못 간 사람이 많았지만, 어쨌든 마음만 먹으면 대학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갑작스레 도입한 졸업정원제로 정원이 크게 늘었고 시험도 단 한번만 본 뒤 그 결과를 받아 들고 계산을 해가며 입학할 수 있었다.

졸업 무렵에는, 경제가 한창 확장되던 때라, 취업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웠다. 공부를 하지 않고도 (좋은) 대학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수의 기업에 턱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조건이 조금만 좋으면 고민 없이 직장을 옮겼다. 대학 시절 내내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도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지금 젊은이들과는 너무 다른 세상을 살았다.

물론 그때는 그때의 문화가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활발한 학생운동이었다. 정당성 없는 정권과, 그 정권이 행사하는 폭압에 맞서 많은 학생들이 싸웠다.

그때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던 친구들에게 기성세대가 던진 질문 가운데 하나가 "너 나중에 정치하려고 그러지?"였다. 그때는 턱도 아닌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됐다.

총학생회장을 하거나 감투 하나씩 쓴 친구들은 어느새 '386세대'가 돼 정치권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진입도 쉬웠거니와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까지 한 몸에 받았다.

외환위기 때도 우리 세대는 해고의 칼날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다. 위 세대는 눈물을 흘리며 일터를 떠났고 아래 세대는 취업의 기회를 날렸지만 우리는 그 틈에서 그럭저럭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듯 우리 세대는 많은 사회적 혜택을 입었는데, 지금의 우리는 제 식구밖에 모르는 이기적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앞서 말했듯 우리 세대는 대학은 쉽게 들어갔으면서도 학벌사회의 과실은 누구보다 많이 따먹었다. 학벌의 중요성을 잘 간파했기 때문에 제 자식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다.

특목고, 명문대에 진학하라고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다그치고 어떻게 해서든 경쟁에서 이기라고 주문한다. 입시 전쟁은 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이토록 처절한 적은 없었다. 사교육시장에서 그런 수요를 알아채고 돈벌이에 적절히 이용하기 시작한 세대 또한 내 또래다.

이들 뿐이 아니다. 정치권의 '386세대'는 노선이 달라도, 출신이 달라도, 젊은 시절 그렇게 분노했던 진영의 인사라도 권력을 쥐고 있으면 그 쪽에 달라붙는 일이 많다. 의사, 변호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의 또래는 돈을 벌자마자 재테크에 열을 올린다. 자기는 한국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도 제 자식은 외국에 조기유학 보내는 또래의 교수도 적지 않다.

물론 우리 세대만 유독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혜택을 많이 입었다면, 사회를 위해 제 욕심은 조금 줄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친구들과 만나면, 옛날 우리가 흉본 기성세대의 모습을 우리가 빼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박광희 피플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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