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상금1억 첫 '로봇 챌린지 대회' 참가 4개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상금1억 첫 '로봇 챌린지 대회' 참가 4개팀…

입력
2007.10.23 00:02
0 0

“309호에 가서 나를 찾아 물컵을 가져오세요.”

알아들었다. 움직인다. 하지만 방향이 틀렸다. 엘리베이터는 그 쪽이 아닌데…. 주저주저하듯 방향 바꾸기를 수 차례. 이제 엘리베이터 앞이다. 문을 열고 3층을 눌러야 한다. 제대로 누를 수 있을까?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수많은 인파가 숨을 죽인 채 로봇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이 단순한 심부름에 상금 1억원이 걸려 있다. 수상팀이 안 나오면 상금이 이월돼 최고 3억원까지 오른다.

산업자원부 주최 국내 최대 규모의 ‘로봇월드 2007’(18~21일)의 일환으로 열린 ‘로봇 그랜드 챌린지’의 현장이다.

1층 출발지점에서 수십m 떨어진 엘리베이터에 도착해 3층 버튼을 누르고 다시 수십m 움직여 309호를 찾은 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심부름 시킨 여성을 찾아 지시한 물건을 집어서 되돌아오는 게 그랜드 챌린지 임무다.

영화와 소설에서 로봇은 위험상황에서 주인을 구하고 농담도 나누지만 현 기술수준에서 이 정도 임무가 가능하다면 1억원이 아깝지 않다.

“일단 주변을 감지하면서 주행하는 능력은 물론이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음성과 얼굴을 인식해야 합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면 팔을 잘 제어해야죠. 가져올 물건은 테니스공 우유병 물컵 전화기 딱풀 중 하나인데 이걸 쥐려면 손가락 제어도 쉽지 않을 겁니다. 또 주변을 인식해서 스스로 지도를 만들고 내 위치를 찾는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기술도 아주 어렵습니다.” 심사위원인 정완균(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현재 열심히 연구중인 최첨단 기술들이다.

이 날 도전팀은 그랜드 챌린지와 비슷한 서비스 로봇 개발이 목표인 과학기술부 프론티어사업단 중 하나인 지능로봇사업단부터 겁 없는 학부생들의 전남연합팀까지 모두 4개팀이다.

첫 출발팀은 부산대 지능기계공학과의 MC로봇. 지도를 맡은 이민철 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음성인식 기술을 보완해 성공률을 더 높였다”고 말했다. 명령을 듣고 약 17분만에 엘리베이터에 도달했지만 MC로봇은 안타깝게도 문을 안 열고 지나쳤다.

심사위원들이 “아니 그럼 에스컬레이터를?”하며 농담을 던졌지만 학생들은 속이 탄다. 길을 잃은 MC로봇이 우왕좌왕한다. 컴퓨터를 껐다 켜야 할 상황이다. 결국 22분37초 만에 부산대팀이 경기를 포기한다.

“학교에서 연습할 때는 잘 했는데 조명이 너무 밝아서 학습한 엘리베이터가 아니라고 인식한 것 같아요.”(부산대 백준영군) 몇 달 동안 잠 못자고 노력한 것이 분하다. 그래도 학생들은 “수고했다”며 분신 같은 로봇을 껴안고 갔다.

두번째 참가팀인 성균관대팀은 로봇이 움직이지 않아 출발도 못해보고 경기를 포기했다. 기대를 모았던 지능로봇사업단의 씨로스(CIROS)는 어쩐 일인지 음성명령을 인식하지 못했다. 찬스를 써서 목표지점을 입력했지만 이번에는 복도에 놓인 책상 등에 걸려 결국 탈락.

사실상 경기 조건은 일반적으로 서비스 로봇을 사용할 가정보다 훨씬 가혹했다. 인파가 몰려들며 지도에 없는 벽이 생겼다 사라지고, 소음과 명령어를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심사위원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범재 박사는 “일상 환경에 부딪혀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로봇기술이 발전한다”고 말했다.

“4월 맨땅에서 시작했다”는 전남연합팀의 사이언스V는 대회 도중에야 완성됐다.

“학교 지원 받고 용돈 털고 해서 1,600만원쯤 들었어요. 그 중 600만원은 태워먹고 부숴버린 값이죠. 센서도 제일 값싼 초음파 센서라 오차가 큽니다. 엘리베이터까지만 가도 좋겠어요.”(호남대 조현구군) 겁 없는 학생들만큼 사이언스V도 무시무시했다.

사람과 주변 장비에 막무가내로 달려들고,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빙빙 돌았다. 탈락 후 조군은 “실수로 1층 지도를 거꾸로 입력하는 바람에 로봇이 반대로 향했는데 장애물 때문에 못 가고 헤맸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화려한 구호를 외치며 퇴장했다. “꿈! 열정! 패기! 우리는 파이팅!”

제1회 그랜드 챌린지는 수상팀 없이 상금을 내년으로 넘겼다. 위대한 도전에 성공하기까지 당연히 있어야 할 아름다운 실패였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