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지하실에 꼭꼭 숨겨져 있던 악재들이 결국 한꺼번에 폭발하고 말았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언제 그랬냐는 듯 사상 최고치 기록을 쏟아냈던 각국 증시를 보며 떠올랐던 “어쩐지 불안하다”는 느낌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난주 말 뉴욕 증시 급락을 시작으로 22일 전 세계 증시가 ‘블랙 먼데이’를 연출한 것은 어찌 보면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다.
■ 악재,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듯
이날 전 세계 증시 동반 폭락은 미국기업의 실적악화에서 촉발됐지만, 사실 그간 짓눌려 있던 여러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폭등은 전 세계 인플레 압력을 고조시켰고, 미국 달러화의 급락은 미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을지언정 세계 각국 경제를 시름시름 병 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세계 경제의 엔진’ 중국의 과열은 언제 거품 붕괴로 이어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이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미 장기전으로 돌입한 상태다.
현재 금융시장에 가장 직접적 불안 요인은 인플레 압력이다. 미 달러화 약세로 실물 자산에 자금이 몰리면서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 가격(11월 인도분)은 장중 사상 처음으로 90달러를 돌파(90.07달러)했고,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 가격도 배럴당 80달러에 육박(79.59달러)했다.
인플레 압력은 수면 아래 잠복해 있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악재를 다시 현재화할 가능성이 높다. 물가상승 압력을 잠재우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경기침체 우려 때문에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최악의 경우 인플레와 경기침체가 맞물리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까지 예견되는 상황이다.
더 심각한 것은 폭발된 악재들이 단기간내 진화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달러화는 기축통화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채 끝없이 추락하고 있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고도성장이 지속되면 될수록 브레이크 파열음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거품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 불가피
우리 경제는 지금 크게 3가지 대외 악재에 직면해 있다. 전세계적인 인플레 압력, 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그리고 차이나 쇼크의 발발우려다.
만약 3가지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강도 높게 진행될 경우 대외 의존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금융시장의 불안을 넘어 실물 경제까지 급속히 얼어 붙을 가능성이 높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고공 행진은 경상수지 악화와 실질 국민총소득(GNI)를 감소시켜 체감 경기를 급랭시킬 수 있다. 미국 경제의 침체가 지속되면 우리 경제를 지탱시켜 온 수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중국 경제가 거품 붕괴로 신음할 경우, 대(對)중국 노출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우리 경제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국내 경제 역시 금융과 실물 부문에서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아직 크게 우려할 단계는 아닐 수 있지만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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