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린 집들은 다 공통점이 있어요. 절도범들이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도 창문에 경보기 등 조그마한 시설만 갖춘다면 이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2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한 주택가 골목. 성동경찰서 강력1팀 현기석(39), 임철환(36) 경사가 안타까운 한숨을 토해냈다.
다세대ㆍ연립 주택이 절도나 성폭행 등 범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대부분 맞벌이 서민이 사는 다세대ㆍ연립 밀집 주택가는 낮 동안 빈집이 많고, 가스 배관이나 다닥다닥 붙은 담 때문에 침입하기도 쉽다. 경제 사정 등으로 주민들이 민간 방범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방범 시설을 설치하는 경우도 드물다. 경찰이 CC(폐쇄회로)TV를 확대 설치하고, 창문열림경보기를 나눠주는 등 예방에 기울이지만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일반인도 가스배관 타고 옥상까지
이날 성동서 경찰관들과 함께 4일 전 검거된 빈집털이 전문범 이모(37)씨가 노렸던 서울 동대문구와 송파구, 광진구 범행 현장 5곳을 찾아 방범 실태를 알아봤다. 이씨는 서울과 수도권 다세대 주택 43곳을 털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5곳 모두 하나같이 절도범 등의 출입을 막을 방호시설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부분은 주요 범죄경로로 이용되는 가스배관이었다.
이씨에게 털린 광진구 구의동의 한 다세대 주택가에서 기자가 가스배관을 타고 5층 안방진입을 시도해 봤다. 별다른 범행 기술이나 도구가 없었지만 1, 2분도 걸리지 않았다. 현 경사는 “가스배관은 창문 옆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범행 통로 역할을 한다”며 “가스배관을 타고 조금만 올라가면 창문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만 고쳐도 범죄가 크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창문도 사실상 무방비인 경우가 많았다. 1, 2층은 창살 등으로 창문을 가려 놓은 경우가 많았지만 3층 이상으로 올라가면 아무런 방범 시설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씨로부터 고가 카메라 등 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도둑 맞았다는 원모(41)씨는 “도둑이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고 경찰에게 전해 들었다”며 “도둑이 든 날 불도 켜지 않은 채 늦게까지 집을 비우기는 했지만 창문에 방범 시설만 했더라도 피해를 막았을 것”이라고 뒤늦게 후회했다. 이웃주민 이모(45)씨는 “옆 집이 털렸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방범창을 달았다”고 말했다.
현 경사는 “꼭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창문이 열리지 않게 간단히 나무 막대기 등을 괴어 놓기만 해도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대책은
경찰도 ‘민생치안’의 대표격인 다세대 주택 관련 범죄를 막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서대문서와 서부서의 경우 다세대 주택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건물 옥상에 형사들이 망원경을 가지고 잠복하기도 하고, 대부분 경찰서에서 범죄 취약지구에 정복을 입은 채 도보나 오토바이 등을 이용해 범인들에게 경찰이 있음을 알리는 ‘위력 순찰’을 하기도 한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이후 자체 예산으로 창문이 열리면 경고음을 내는 창문열림경보기 3만5,000여대를 구입해 범죄 빈발 지역 주민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서울경찰청 조용섭 생활안전과장은 “경찰서별로 방범 진단을 해 관내 지도상에 범죄 취약 다세대 주택 등에는 빨간색을 칠해 특별 관리하는 범죄환경분석지도를 작성했다”며 “경찰이 취약지역으로 지정해 방범 활동을 강화하는 곳만 서울에 934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건물 설계 단계부터 CCTV와 보안등을 설치하는 등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을 추진하는 게 근본적인 방법”이라며 “서울시 건설협회 등 11개 유관기관과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박유민인턴기자(이화여대 국문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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