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들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일단 눈을 한번 씻게 될 것이다. 퇴폐적일 정도로 탐미적이고 몽환적인 선 놀림, 텅빈 내면과 부서진 육체 속에서도 권태롭고 나른한 데카당의 얼굴들. 문화혁명의 충격이 아로새겨진 냉소적 사실주의로 지금 세계 미술계를 주름잡고 있는 장샤오강, 웨민준 등 중국 현대미술의 2, 3세대 작가들과 달리, 이들은 개방에 따른 서구문화와 소비주의의 세례를 한껏 받고 자란 4세대 젊은 작가들이다.
서울 소격동의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가 중국 4세대 작가들을 대표하는 프로젝트 팀 ‘언마스크(UNMASK)’의 작품을 국내에 첫 소개하는 전시를 11월 10일까지 연다.
언마스크는 베이징중앙미술대학 조각과를 졸업한 세 친구인 리우잔(31), 쿠앙쥔(29), 티엔웨이(31)가 2001년 결성한 팀. 순백과 황동의 빛으로 창백하고도 유려하게 빚어낸 인물상들인 ‘반투명(Translucency)’ 연작은 세 작가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졌다.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지극히 유미적인 이 작품들은 ‘진짜’ 공산주의를 체험하지 못한 중국 신세대들의 자아로의 귀환을 보여준다. 극한소비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린 황량한 소외와 허무, 그 나락이 뜯겨나간 자아의 형상으로 변환돼 외롭게 휘황하는 모습이 뇌쇄적이면서도 처연하다.
훼손된 나체의 와중에도 손톱과 입술은 붉게 물들어 있고, 황금의 눈썹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며 하늘을 향해 뻗어올라 있다. 쾌락의 사양(斜陽)을 향해 가는 ‘반투명’ 연작들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동물은 교미 후에 슬프다”는 미국 시인 펄링게티의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마스크가 빚어낸 가면 벗은 얼굴들은 모두 데드마스크처럼 굳어있다. 어쩌랴, 가면을 벗는다는 것조차 어차피 하나의 위장인 것을. (02)720-5789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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