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량 기업이 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분권화’다. 모든 결정권이 최고경영진에게 집중된 중앙 집권화 한 공룡기업은 변화에 둔감하다. 분권화의 장점은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맞춰 기업이 빠르게 진화한다는 것이다.”(베스트셀러 <초우량 기업의 조건> 의 저자 톰 피터스) 초우량>
SK에 정중동의 바람이 불고 있다. SK는 ‘경영의 분권화’로 집약되는 지주회사 체제를 준비하던 올해 초부터 재계와 증권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은 순환출자 형식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지분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외형적 차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SK 변화의 완성은 결국 지주회사 체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내부 ‘시스템 경영’의 정착과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의 조화에 달려있다.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SK의‘조용한 변화’는 가을 바람을 타고 제주에서부터 먼저 불어올 조짐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2일부터 4일간 제주에서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CEO세미나를 주제한다. 매년 이맘 때면 열리는 연례 세미나이지만, 올해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첫 회의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세미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지주회사 체제에서의 지속가능 경영’과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현황과 전략’. 이들 주제의 기저에는 SK 변화의 핵심 과제인‘시스템 경영’ 정착을 위한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최 회장은 SK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선포 이후 사내방송을 통해 가장 먼저‘시스템 경영’을 예고했다. 그는 “결국 지배구조라는 건 상황에 따라 누가 어떤 단계를 밟아서 어떻게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총수 1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선‘다자 의사결정구조 시스템(Multi-Decision Making System)’이 우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신을 버림으로써 만사를 얻겠다는 용기 있는 결단인 셈이다.
시스템 경영의 요체는 기업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고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와 경영 불확실성이 날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업이 생존하려면 각 사별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각 계열사들은 독립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설계하고 스스로 생존할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책임경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이런 독립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그룹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 바로 ‘따로 똑같이’가 SK그룹이 지향하는 새로운 경영체제의 발전상인 셈이다.
기업문화도 진화한다
최 회장은 올해 초 신입사원과의 대담에서 향후 사업다각화 구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건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각 계열사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 가능성을 심도 있게 타진한 후 이사회가 최종 결정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SK그룹은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2004년부터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해왔다. SK에너지, SK텔레콤 등 상장사의 경우 사외이사 비율이 70%에 달하며, SK C&C 같은 비상장사도 50%나 된다. SK에는 구성원들 합의로 정해진 특유의 기본 경영지침서 SKMS(SK Management System)가 있다. SKMS 첫 장에는 SK의 기업관이 적혀있다. ‘기업은 안정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뤄 영구히 존속 발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고객과 구성원, 주주에 대한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사회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여야 한다.’
SK그룹은 이를 근거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행복 극대화를 위한‘행복경영’을 추진해왔다. 이는 최 회장이 실천하려는‘행복 경영론’의 근간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이번 CEO세미나에서 이 같은 SKMS의 내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계획이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SK그룹은 계열사 간 복잡한 지분구조를 단순화하고 각 사별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을 강화, 사업 특성에 맞게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독립 네트워크로서의 그룹 경영 체제를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돋보인다”며 “이 같은 모색은 한국 대기업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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