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널드 테일러를 꺾고 세계 챔피언에 올랐지만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테일러를 꺾고 그해 12월28일 페르난도 카바넬라에 15라운드 판정승을 거둬 1차 타이틀 방어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듬해 3월 시련기가 찾아왔다. 아직도 내 복싱 인생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인물, 바로 알폰소 사모라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어렵게 따낸 챔피언 벨트를 뺏은 장본인으로 그는 젊은 시절 내게 최대 시련을 안겨주었다. 일년 사이에 두 번 붙어 모두 패했기 때문이다.
1975년 3월 14일 미국 LA에서 열린 사모라와의 2차 타이틀 방어전에서 4회 KO패 당한 뒤 부대에 복귀하자 군인정신이 모자란다며 일주일간 영창에 보내졌다.
건군 이래 일등병으로 처음 사열을 받았던 영웅이 영창에 가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경기에서 패한 게 영창 감이 되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당시는 그랬다.
사모라는 18전 연속 KO승을 거둔 강호였다. 나는 경기 전날 두 번의 계체량에서 모두 실패해 시합도 하기 전에 진을 빼는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다.
2회전을 마치고 코너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으며 호흡곤란 증세도 있었다. 3라운드가 시작되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스텝이 현저히 둔해졌다.
운명의 4라운드 중반. 로프에서 빠져 나오려다 사모라의 라이트 어퍼컷을 안면에 맞았다. 아주 짧은 펀치였으나 챔피언 타이틀을 뺏어가는 한방의 결정타였다.
열렬히 환영한 LA 교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고 귀국 길에 올랐다. 국내 팬의 시선도 싸늘했다. 당시 나이 스물 다섯. 주변의 냉대와 멸시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래, 돈도 벌었으니 복싱을 그만두자'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비록 패했지만 사모라전에서 2,500만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받았다. 강남 신사동 사거리 배 밭의 평당 가격이 400~600원 정도에 불과할 때였다.
정운수 후원회장을 찾아가 복싱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정 회장은 "솔직히 너에게 실망했다. 복싱은 맞아서 쓰러지면 말리는 심판이라도 있지만, 모르긴 몰라도 쓰러지면 발로 짓이겨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게 세상이다. 복싱은 이 험난한 세상에 비하면 양반이다. 이 친구야, 넌 이미 너 자신에게 졌어"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링 위에서 피니시 블로를 맞은 느낌이었다. 순간 나는 '가자, 가서 다시 시작하자!'며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충실히 연습해 두 달 후 멕시코의 자니 메사와 재기전을 갖고 2라운드 KO승을 거뒀다. 8월에는 올란도 아모레스와 세계 타이틀 전초전을 치러 승리하는 등 다시 승승장구했다.
1976년 10월 16일 사모라와의 재대결이 성사됐다. 당시 사모라는 25전 연승 전 KO승을 기록 중인 세계 최고의 경량급 복서였다. 나와 가족, 후원자들이 대전료 10만 달러를 만들었다.
결전의 날인 16일. 당시 대회가 열렸던 인천 선인체육관 주변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B석의 티켓 값이 2만원에 달했고 최대 5만원까지 할 정도로 인기 폭발이었다.
나는 매서운 사모라의 펀치를 피해가며 그런대로 경기를 잘 풀어갔다. 9라운드. 링 중앙에서 레프트 잽을 날리다 갑작스럽게 원투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그러자 사모라의 무릎이 꺾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는 간신히 로프에 의지해 다운 위기를 모면하고 있었다. 사모라의 턱이 수박처럼 크게 보였다.
그 턱에 레프트 한 방을 날리려는 순간 레프리가 끼어 들어 사모라를 구했다. 우리 가족의 생계 수단인 목욕탕을 팔고도 부족해 주변 사람들의 피와 땀을 모아 만든 10만 달러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조짐이 들기 시작했다. 심판의 야속한 판정이었다.
11라운드에서는 타임아웃 공이 울리고 나서 고개를 돌렸는데 사모라의 묵직한 펀치가 날아왔다. 종료 공을 듣지 못한 사모라가 계속 공격해왔고 뒤늦게 심판이 제지했다. 휴식 시간 없이 12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사모라는 나를 거칠게 몰아세웠다. 코너에 몰려 여러 대를 맞았다. 사모라도 지쳐있었다. 정신을 잃을 만한 충격은 없었으나 한번의 스탠딩 다운도 없는 상황에서 심판이 경기를 중단하고 사모라의 손을 들어 주는 게 아닌가.
어이없는 패배로 경기가 끝나자 어머니는 링 위로 올라가 "이 놈들아, 내 피 같은 달러 내놓아라"고 외치며 통곡했다. 우리 형은 심판의 멱살을 잡고 위협해 나중에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했다. 석연치 않은 경기 운영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어쨌거나 패배는 패배. 주변에서는 '홍수환 시대'가 막내렸다며 싸늘한 눈초리를 보냈다. 사모라전에서 연속 패배한 나는 또 다시 한동안 '젊은 날의 방황기'를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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