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노무현 대통령의 경찰의 날 기념식과 외신기자 간담회 발언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언어 비용'을 거듭 일깨웠다. 임기 말의 뒷정리에만 매달려도 바쁠 대통령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언제까지 투박한 입심을 과시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노 대통령은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와 '경찰 내부 특정집단' 문제를 거론, 경찰의 생일잔치에 찬물을 끼얹었다. 노 대통령은 "공약했던 수준보다 높은 수사권 독립 방안을 제시했지만 여러분 조직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비난발언으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평소라면 "공약을 실천하지 못한 책임을 엉뚱하게 돌렸다"는 볼멘 반응과 함께 "수사권 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 아니냐"는 선의의 해석도 나올 법하지만 날이 날인 만큼 경찰이 뒤숭숭하다.
경찰대학 출신을 겨냥한 듯한 "출신 연고에 따라 내부 집단이 형성되고, 특정집단의 독주체제가 조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가 경찰이 안고 있는 숙제의 하나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같은 말도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 다른 자리라면 몰라도 덕담과 격려를 듣자고 모여든 경찰 간부들 앞에서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나온 "북한에 남침에 대한 사과를 강요할 수 없다"는 말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인지 귀가 의심스럽다. 사과와 배상 등 '한국전쟁 청산' 문제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형식적으로라도 거치게 마련이다.
평화협정 체결 전망이 아직 분명하지 않은 단계라면 사과와 배상의 수준과 방법 등을 검토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 '우리 입장'에서 도발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게 타당한 생각"이라는 대통령이 같은 입으로 "강요할 수 없다"면, 그것은 '누구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인가. 스스로가 이 나라 대통령이 아니라 남북의 중간자나 제3국 지도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디 대통령이 국민 전체의 지도자로서, 때와 장소를 가려 정말 필요한 말만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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