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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3) 헨리 다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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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3) 헨리 다저

입력
2007.10.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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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야 놀라운 아마추어 화가이자 소설가임이 밝혀진 헨리 다저(1892~1973)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다저는 ‘아웃사이더 아트’(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예술가들의 작업)를 이야기할 때면, 결코 빠지는 법이 없는 대표적 인물이다. 최근엔 차차 대중적 인기까지 얻는 중이다.

하지만, 생전의 그는 81세의 나이로 작고하기까지, 정신지체 장애를 지닌 청소부 노인에 불과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톨이로 살았던 터라, 그의 이름이 ‘다저’인지 아니면 ‘다거’인지 옳은 발음을 아는 이웃조차 없었다. 결국 그의 이름은 이리저리 불리고 있다.

다저의 사후, 그의 단칸방에서 수백여 장의 아름다운 수채화 연작과 1만 5,000여장에 달하는 길고 긴 이야기의 타자 원고가 발견됐다.

원고의 제목은 ‘어린이 노예 반란으로 인한, 글랜디코-엔젤리니언 전쟁 폭풍의, 비현실의 영역으로 알려진 곳에서 벌어진, 비비안 소녀들의 이야기’. 이는 예술의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초장편 전쟁 판타지 작품이었고, 이후 다저와 그의 노작은 소수의 예술 애호가들에 의해 때늦은 명성을 얻었다.

이런 사후의 영광은, 노인에게 우호적이었던 집주인 키요코 레너 덕분에 가능했다. 그는 고인의 방대한 유작으로 가득한 단칸방을 애써 보존해왔다.

집주인에 따르면, 다저의 방문 너머에서는 홀로 여러 사람의 말을 지껄이는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곤 했다. 소위 ‘정상인’의 기준에서 볼 때 고인은 ‘광인’에 불과했으나, 그 ‘남다르게 고장이 난’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피조물들이 서로 대화하고 투쟁하며 낙원과 지옥의 광활한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저가 평생에 걸쳐 구축한 복잡다단한 전쟁의 세계는, 지구보다 수천배 큰 가공의 혹성에서 시작된다. 신을 섬기지 않는 ‘글랜딜리니아의 군인들’은 고귀한 소녀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부리는데, 이들은 1차대전에 참전했던 군인들과 닮았다.

반면에 ‘소녀 해방’을 위해 영웅적으로 맞서 싸우는 7명의 ‘비비안 소녀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임에도, 종종 옷을 걸치지 않은 채 등장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모두 조그마한 남성기를 달고 있다. 길고 긴 종교전쟁의 주역인 소녀들은 모두 허매프로다이트(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합성어로 남녀추니를 뜻한다)인 것일까?

그뿐만이 아니다. 전쟁의 주요 고비마다 등장하는 동양적 색채의 용과 이무기를 비롯한 여러 신령한 괴수들은 낯설게 아름다운 외양만큼이나 그 기질과 행동이 괴이하다. 또한 폭풍을 몰고 오는 구름과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 찬 소녀들의 낙원은 (글랜딜리니아인들의 소녀 살육으로 인해 종종 처참한 지옥이 되고 말지만) 불안하도록 평화로운 아름다움을 뽐낸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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