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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영상으로… "비극의 역사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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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영상으로… "비극의 역사 기억하라"

입력
2007.10.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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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소설가 이호철(75)씨의 경기 고양시 선유동 집필실에서 그의 연작 소설집 <남녘사람 북녁사람> 에 대한 독회(讀會)가 열렸다. 이씨는 지난해 9월 23일 첫 행사를 시작으로,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정기 독회를 열고 있다.

이씨는 2004년 여름 구동독 지역에서의 순회 독회 경험을 먼저 전했다. “유럽에서 소설 독회는 독자들이 입장료를 내고 참석하는 보편적 문학 행사로 자리잡았다”는 그는 “조촐한 시작이지만 내 소설의 정기 독회가 국내 독회 활성화의 씨앗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유재용씨 등 작가들을 포함, 25명 가량이 참석해 2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독회에서 이씨는 책의 일부 내용 낭독 후 당시 상황, 작중 인물의 실제 모델 등 창작 배경을 설명하고, 참석자들과 질의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한 참석자의 요청을 받고 작품에 가사가 인용된 구소련 노래 몇 곡을 즉석에서 부르기도 했다.

독회장 한켠에선 행사 전 과정을 촬영하고, 작가 및 참석자들의 발언을 일일이 녹음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독회 주관단체인 ‘분단문학포럼’ 대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민병모(45)씨는 이날까지 13차례 열린 독회 전 과정을 스탭들과 함께 빠짐없이 영상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민씨는 “대형서점이나 출판사의 상업적 계산에서 최근 붐처럼 일고 있는 독회 행사들에 비해, 이호철 선생의 독회는 작가-독자의 소통이라는 독회의 원래 취지에 충실한 행사”라고 말했다.

민씨는 이 독회를 비롯해 이호철 문학의 면면을 보여줄 수 있는 영상물 제작작업을 5년째 해오고 있다. 특정 작가에 관한 일련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은 국내 문단에선 보기 드문 기록작업이다. 재직하던 프로덕션의 프로그램 제작 관계로 이씨와 알게 된 민씨는 2003년 동영상 제작사를 차려 독립하면서 이호철 문학의 영상기록에 본격 착수했다.

서정주, 김사량, 이태준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는 문학애호가인 그는 이씨의 문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선생의 문학은 절에 비유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화려한 사찰이 아닌, 산중에서 본연의 수행에 매진하는 건실한 절”이라며 “50년 넘게 객관적 태도로 분단문학을 천착해 왔다는 점에서 선생의 문학은 독보적이고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민씨의 영상기록 시작은 2003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문학인대회에 이씨가 한국 대표로 초청받으면서였다. 동행 취재차 독일에 함께 간 민씨는 공식행사에는 의미있는 촬영거리가 적다고 판단하고 이씨에게 옛 동독 지역 탐방을 제안했다.

“그때가 새벽 2시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였는데 선생이 듣자마자 당장 동베를린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두 사람은 며칠간 옛 동독 사람들을 만나 통일 13년이 흐른 지금의 현실과 심경을 인터뷰했다. 이씨는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이듬해 초 <동베를린 일별 기행> 이란 단편을 발표했고, 민씨는 이 작품을 대본 삼아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 다큐는 그해 11월 KBS에서 방영됐다.

민씨는 이씨 소설의 무대가 됐던 현장을 찾아 작가의 육성과 함께 영상으로 남기는 일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2005년에는 월남했던 이씨가 서울에서 거주한 혜화동, 돈암동, 삼선동, 필동 등지의 하숙집과 결혼 후 얻은 불광동 집 등 10여 군데의 거처를 찾아 이씨의 회고담과 함께 영상에 담았다. 최근엔 이씨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인민군으로 6ㆍ25에 참전했다가 패잔병으로 후퇴하며 밟았던 길을 추적해 다큐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씨의 당시 경험은 그의 단편 ‘나상’, 소설집 <남녘사람 북녁사람> 등을 거쳐 올해 계간 <문학의 문학> 가을호에 발표한 단편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품의 모티프가 됐다. 다큐 작업은 이씨가 후퇴를 시작한 경북 울진부터 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강원 양양까지가 촬영 대상으로, 이씨의 길잡이 노릇을 해줬던 인민군 노자순씨와 함께 노숙한 양양 수리마을 큰바위 등은 촬영을 마친 상태다.

이씨의 홈페이지(www.leehochul.com)를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한 민씨는 영상자료를 꾸준히 축적해 ‘분단문학관’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지자체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유품 전시 중심의 문학관이 아닌, 작가의 행적과 작품세계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영상기록을 구비한 살아있는 문학관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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