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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외유 판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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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외유 판결' 유감

입력
2007.10.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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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행정법원에서 '외유(外遊)'에 대한 사법적 정의를 내린 듯한 판결이 있었다. "해외연수에 관광이 상당부분 포함됐지만, 일정 가운데 시찰도 일부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문제가 된 해외연수가 오직 관광을 목적으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도입된 주민소송제의 첫 사례로 구의원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는데, 원고가 패소했다. 판결 근거는 위법성 유무에 국한될 수밖에 없지만, 자칫 공직자의 외유를 비난하려면 '오직 관광을 목적으로 했을 경우'로 한정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좀 섭섭하다.

■조선 말 고종 때의 신사유람단이 요즘 말하는 공직자 외유의 원조라 할 수 있겠다. 강화도조약(1876) 직후 일본에 갔던 수신사 김홍집이 <조선책략> 이라는 중국 책을 갖고 들어와 외국문물의 효율성이 대두됐고, 이에 정부는 엘리트 공무원 30여명을 뽑아 일본시찰을 보냈다(1881).

국민 세금을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곳에 쓰는 것이 미안했던지 국내에선 이들의 행동을 비밀에 부쳐 한양에서 부산까지 오고 가는 동안 암행어사 신분과 행색으로 위장했다. 3개월 정도 일본에 머물 때에도 조별로 흩어져 민가를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정치적 의도는 논외로 하고, '외유의 모양을 갖춘 출장' 이후 그들은 일본의 정부조직으로부터 군사시설과 무역체계, 도서관과 박물관 등까지 연구해 왔다.

'이과수 폭포 유람단'에서 촉발된 공직자들의 '출장의 모양을 갖춘 외유'가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공기업 간부들의 어이없는 외유가 끝없이 도마에 오른 데 이어 권위의 상징인 헌법재판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가청렴위원회 공무원들마저 관행적으로 그렇게 세금을 낭비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더구나 그들의 외유 목적은 '선진국의 부패방지 사례 연구'였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늘어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보도블록 교체와 공무원 외유다. 예산을 남기면 내년 예산에서 그만큼 깎일 것이므로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게 나름대로의 이유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관광 스케줄을 잡아놓고 '시찰할 내용'을 끼워 넣는 꼴이 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신사유람단의 '신사(紳士)'는 지식과 양심을 갖춘 선비층을 의미했다.

공직자가 갖춰야 할 덕목과 비슷한 의미다. 놀기를 많이 했느냐 공부를 많이 했느냐가 '욕먹는 외유'의 잣대가 될 순 없다. 목적을 따지고 결과를 검증해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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