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큰스님들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수행자의 본분(本分)을 망각한 허물을 깊이 참회합니다.”
신정아-변양균씨 사건과 각종 비리 의혹 등의 여파로 사회적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불교 조계종(종정 법전ㆍ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19일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수행 종풍 진작을 위한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 대법회’를 열고 참회와 자정을 다짐했다.
성수, 정무, 고우, 도문 스님 등 원로들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스님 1,000여명과 신도 8,000여명은 1947년 청담, 성철, 자운 스님 등이 일제 식민지 불교의 잔재를 타파하고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불교계 혁신에 나선 ‘봉암사 결사’ 정신을 계승해 흐트러진 종단 분위기를 새롭게 할 것을 천명했다.
명종, 헌향, 삼귀의, 반야심경 독송 순으로 시작된 법회는 봉암사 결사 경과보고와 규약 낭독, 기념사, 각계 동참사, 참회문 낭독, 종정 스님의 법어에 이어 사홍서원을 끝으로 1시간30여분간 계속됐다. 행사 직전 비가 많이 쏟아졌으나 희양산(해발 999m)이 올려다보이는 대웅보전 앞 마당을 가득 메운 스님들은 예정대로 행사를 진행했다.
봉암사 주지 함현 스님은 봉암사 결사 경과 보고 말미에 “이땅의 불교는 대내외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으며, 이 같은 암담한 현실을 지켜보는 봉암의 대중들에게 한 사발의 맑은 죽이 씀바귀처럼 쓰고 한 가닥 엷은 가사는 태산처럼 무겁다”고 최근 어지러운 조계종 상황에 대해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함현 스님은 이어 개혁이란 명분으로 실시되고 있는 일체의 선거 철폐, 승가를 오염시키는 정치적 파벌 일소, 선종의 청규(淸規)에 의한 수행풍토로 돌아갈 것 등을 제안했다. 예정에 없이 이루어진 이 제안은 선(禪)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수좌 스님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조계종 중앙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승들을 겨냥한 것이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기념사에서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내우외환을 겪으며 스스로의 수행가풍을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냉철히 자신을 돌아보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한 모습의 불교, 추상 같은 계율과 수행 가풍을 이어가는 조계종단을 만들어가는 것이 사부대중의 과제일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선원수좌회 대표 혜국 스님은 60주년 기념선언문에서 “우리 앞에는 명리(名利)에 끄달려 서로 비방하고 남을 탓하며 구업(口業)으로 지은 허물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며 일체의 명리를 버리고 본분에 충실할 것, 수행을 생활화ㆍ사회화할 것 등의 실천지침을 제시했다.
이날 참가한 스님들은 선원수좌회 의장 영진 스님이 낭독한 참회문을 통해 “최근 불교계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일부 그릇된 인식과 음해의 요소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나 근본적으로 불교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고려중기 보조 국사가 정혜결사(定慧結社)에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다시 일어나라’고 한 말처럼 잘못된 자리에서 자정하고 참회하여 다시 시작하자고 밝혔다.
중앙종회, 교구본사주지회의, 중앙신도회 등도 자성과 반성의 뜻을 밝혔다.
이날 법회는 종정 법전 스님의 “여기 모인 대중(大衆)은 역순(逆順)을 자제하는 기틀로 곧은 것과 굽은 것을 모두 놓아버리면 시방(十方)의 종지(宗旨)가 한 곳으로 모일 것이요, 정(正)과 사(邪)의 시비(是非)가 원융(圓融)을 이룰 것이다”라는 법어로 마무리됐다.
■ 봉암사 결사
1947년 가을부터 1950년 봄까지 3년간 봉암사에서 청담, 성철, 자운 등 몇몇 스님들이 일제 하에서 흐트러진 불교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진행한 수행 결사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선종의 청규(淸規) 정신을 실천, 대처승을 몰아낸 정화운동과 조계종 재건의 토대가 됐다. 간화선풍, 괴색 가사, 반야심경 독송, 신도들이 스님에게 삼배하기 등 이때 만든 의례와 규칙 등은 조계종의 관례로 정착됐다. 이 결사에 참가한 스님들 가운데 종정 4명, 총무원장 7명이 나왔다.
문경=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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