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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책의 부활, 인간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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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책의 부활, 인간의 부활

입력
2007.10.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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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은 무더위 속에서 한바탕 책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보냈다.

특별한 귀중 도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목을 받을 만큼 소장 도서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간 책이 늘어나는 대로 겹겹이 꽂아놓았던 터라 급히 필요한 책이 생각나도 서가를 뒤지기보다 도서관에 달려가는 것이 오히려 편했었다.

책을 정리하다 보니 안쪽에 꽂혀있는 책 중에는 몇 년 동안 찾지 않아 오래 잊혀졌던 것들도 많았다.

그 책들이 내 퇴임 덕분에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자 잃었던 물건을 찾은 듯 반가우면서 도 다른 한편 책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장서라는 미명으로 책을 쌓아두고 오랜 세월 주인이 찾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이들은 그동안 잠자고 있었거나 죽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산 책이라 해서 어찌 그것이 나만의 소유여야 하겠으며 어찌 내 마음대로 그들을 죽이고 살리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책 일부를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처럼 보인다.

설령 내가 책을 쌓아둘 넓은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또다시 어느 한 구석에서 홀로 세월을 보내게 한다면 책에게도, 이 책이 필요한 미지의 독자들에게도 너무 미안하고 큰 손실이 아니겠는가.

다행스러운 것은 진정한 장서란 어느 시기 잠자고 있었더라도 그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중하게 보관만 할 수 있다면 누군가의 책들처럼 도서관에서, 후손들의 집에서 새로운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이 책들은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서 그 무한히 잠재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인간과 책은 참 많이 닮았으면서도 바로 이 지점에 와서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버림받아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난 인재가 수없이 많으나 그 재능을 글로, 책으로 남기지 않은 한 그는 다시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책을 쓰는 것도, 버리거나 남겨주는 것도 인간이지만 결국 인간의 운명은 책에 종속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저런 사념 속에 연구실을 떠날 때까지 결국 정리를 끝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가을에 책들과의 전쟁을 또다시 시작하고 있다.

이혜순ㆍ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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