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지음ㆍ현대경제연구원 옮김 / 북@북스 발행ㆍ736쪽ㆍ2만5,000원
레이건 정권 말기인 1987년부터 부시 집권 2기인 2006년까지 세계의 수많은 은행가, 투자분석가, 금융정책가들은 한 사람의 입을 주목해야 했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81) 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 그의 한 마디에 세계 주식시장은 등락을 거듭했고 투자자들은 일희일비했다.
지난달 출간돼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린스펀 의장의 회고록 <격동의 시대:신세계에서의 모험>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사실 연준위 의장 시절 그의 말은 애매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죽하면 ‘페드 스피크(Fedspeak) : FRB 정책당국자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오는 애매모호한 어법’ 이라고 했을까. 그린스펀은 책에서 근질근질했던 입을 열고 자신의 시대를 직설적으로 회고한다. ‘검은 월요일’로 상징되는 주가폭락과 엄청난 빚에 허덕이던 레이건 정부시절 연준위 의장에 취임해 악전고투 끝에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멕시코 금융붕괴위기가 닥친 클린턴 정부시절 국민여론의 반대를 뚫고 멕시코에 500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해 미국경제의 영향을 최소화한 일 등 뒷이야기들을 생동감있게 털어놓는다. 격동의>
오랜 공직생활을 하며 지켜본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를 확인하는 일도 흥미롭다. 그는 ‘나는 영원한 공화당원’이라고 했던 것처럼 ‘매우 똑똑하나 의심이 많고 편견이 있다’ (닉슨) ‘결단력이 최고’ (레이건)라는 식으로 공화당출신 대통령들에게는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례적으로 민주당 출신인 클린턴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경제요인까지 관심을 갖는 ‘경제커플’ 이었다며 찬사를 보낸다. 우리에게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1997년 태국, 홍콩, 필리핀을 거친 금융위기가 한국에 닥쳤을 때 그의 반응이다. 그린스펀은 그 해 11월 “댐이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라며 수백억 달러 상당의 대한(對韓)차관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일본관리의 말을 들었는데, 후일 한국정부가 외환보유고를 속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으로 느꼈었다고 당시 상황을 술회한다.
이밖에 우상이었던 뉴욕양키스 타자들의 타율을 계산하면서 소수점을 익혔던 어린시절, 밴드에서 클라리넷과 색소폰주자로 활동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학창시절, 두 번째 부인이 된 미국 NBC기자 안드레아 미첼과의 열애과정 등 그의 사적 기억들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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