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지음 / 이매진 발행ㆍ175쪽ㆍ9,000원
‘시민 없는 시민운동, 일상과 유리된 시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과 더불어 우리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한국의 시민운동이 요즘 직면하고 있는 비판들이다.
그동안 우리 시민운동은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명망가들이 큰 틀의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운동을 통해 이를 정책으로 전환시키는 데 집중해왔다. 반면 생활공간으로 스며들어가 교육, 환경, 자치 등 다양한 일상의 과제를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활동은 상대적으로 허약했다.
부천YMCA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커뮤빌더> 의 저자 김기현은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회를 ‘심층적’으로 변화시키는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우리>
정치개혁, 행정개혁, 지구온난화 방지 같은 큰 의제들도 중요하지만 안전한 먹거리 유통, 공동 보육, 보행권 보장, 인간적인 의료서비스 확보 같은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소한 실천’이야말로 사회변화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역공동체 속에서 일상의 문제를 고민하는 ‘커뮤빌더’ 즉 ‘커뮤니티 빌더(community builder)’ 네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주부, 제빵사, 농민 등 평범했던 이웃들이 어떻게 지역을 변화시키는 시민운동 리더가 됐는가를 조명한다.
박혜연 전 녹색가게연합회장, 그는 20여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첫 아이를 YMCA 교육프로그램에 맡기면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부천지역에서 교복 물려입기, 재활용 패션쇼, 천연비누 만들기 등을 성공적으로정착시키며 지역의 ‘느티나무’ 같은 대모가 됐다.
제빵사 출신의 김형도씨는 1999년 부산의 대표적 낙후지역이었던 해운대 반송지역에 빵집을 차렸다.
‘낯선 곳이라 사람 알면 장사에도 도움 되겠지…’ 하는 실리적인 생각에서 주민들에게 제빵강좌를 시작했는데, 지역주민의 결속력은 그를 강인한 지역운동가로 거듭나게 했고 주민자치센터를 왁자지껄 동네문제 토론하는 명실상부한 주민자치공간으로 만들어냈다.
안성의료생협의 박상섭 이사. 농민 출신이었지만 농민회 활동에조차 무심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의료생협을 통해 무료검진을 받고 위암 판정을 받게 되면서 활동가가 됐다.
그는 “내 건강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다른 사람들의 활동을 이끌어내려 솔선수범하다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라고 겸손해하지만 안성의료생협은 2,400명의 조합원이 다양한 소모임을 꾸려나가는 의료ㆍ생활공동체로 성장했다.
어린시절 홍역을 앓아 불편했던 다리를 수술을 통해 회복하고 ‘크면 좋은 일 해서 남 돕겠다’고 다짐했다는 변희종 광명YMCA 등대생협 이사장.
그는 ‘얼굴과 얼굴이 만나는 유통’을 기치로 내건 유기농산물 공동구매운동을 비롯해 한 달에 한 권 책읽기, 어린이놀이터 안전모니터링 등 다양한 생활영역을 관장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작은 실천이 작은 변화를 불러오고 작은 변화들이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믿음을 전파한다. 전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 시민운동이 꼭 참조해야 할 책이다.
내가 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무기력함을 떨치고, 나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데서 시민운동은 커간다는 것을 이 책은 입증한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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