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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수천가지 맛과 향… 늦가을 사케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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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수천가지 맛과 향… 늦가을 사케에 홀리다

입력
2007.10.2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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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은근히 계절을 탄다. 뜨거운 여름날이면 등골까지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 제격인 것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따끈하게 데운 히레사케가 그립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술은 딱 두 가지로 나뉜다. 계절을 타는 술, 계층을 타는 술. 소주나 와인, 양주가 각각 서민과 문화적 중산층, 부유층을 대변한다면 맥주나 사케는 각 계절의 흥취를 담아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깊어가는 가을, 사케의 매력에 푹 젖어볼까.

한동안 와인에 심취했었다는 정운경(35ㆍ의사)씨는 최근에는 사케바를 즐겨 찾는다. 단순히 일본식 소주 정도로 인식했던 사케가 양조장에 따라 수천가지 맛을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관심이 커졌다.

정씨는 “와인도 공부해가며 즐기듯 사케도 알면 알수록 더 빠져드는 같다”며 “제조자에 따라 수천가지의 맛을 내고, 안주에 따라 잘 어울리는 종류가 따로 있어서 자신의 취향과 견문을 자랑하며 마실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일본 청주, 사케에 대한 관심이 꾸준하다. 지난 봄 서울 청담동과 신사동 일대 사케바가 하나 둘 생겨나면서 시작된 사케 열풍은 비교적 외국 문물에 우호적인 해외 유학파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이젠 와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롯데호텔 일식당 모모야마의 이미향 캡틴은 “전에는 젊은 손님들은 식사를 하면서 와인을 곁들이곤 했는데 요즘은 사케를 찾는 사람들이 꽤 늘었다”면서 “젊은층이 선호하는 저도주인데다, 일식에 곁들이므로 웰빙 트렌드에도 잘 맞는 것, 숙취가 거의 없다는 점 등이 인기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사케는 쌀을 발효시켜 맑게 걸러낸 술로 한국 청주와 만드는 법은 비슷하지만 맛은 확연히 다르다. 한국 청주가 일반 쌀로 빚는 데 반해 일본에서는 사케용 쌀을 별도로 재배해서 이용하는 데다 양조장마다의 고유한 주조법을 사용, 독특한 향과 색을 만드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주 원료인 쌀과 누룩을 띄워 사케를 만드는 과정은 고도로 발달한 일본식 의전을 엿보는 것 같다. 이 캡틴은 “사케용으로 재배한 쌀은 일주일에 걸쳐 50시간을 들이는 정교한 공정을 거쳐 정제하고 초를 재가며 씻는 등 미묘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통제된다”며 “사케 제조과정을 들여보면 ‘일본인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브랜드 명 또한 일본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일본 내 지명도 1위라는 유명 사케 브랜드 핫카이산(八海山)은 일본 전설 속의 명산을 뜻하고, 한국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브랜드 오니고로시(鬼ころし)는 귀신도 죽일 만큼 맛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케의 맛은 원료와 물에 의해 결정된다. 물이 좋기로 유명한 니가타현이 유명 사케 브랜드를 많이 내놓고 있는 이유다. 등급은 일본 국세청이 쌀의 정미율과 알코올의 함유를 따져 매긴다. 먼저 정미율에 따라 다이긴조, 긴조, 혼죠죠 세 등급이 있다. 다이긴조(大吟釀)는 정미율 50%로 최고급 술이다. 긴조吟釀는 60%, 혼죠죠(本釀造)는 70%이다.

일반 취사용 쌀 정미율이 90~95%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을 깎아내고 쌀의 투명한 속살만을 원료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주조단계에서 쌀과 누룩만을 사용해 발효시켜 만든 것은 준마이(純味)가 붙어서 한단계 높은 사케로 여긴다. 쌀과 누룩에 알코올을 섞어서 발효시킨 것은 준마이가 붙지않는다. 결국 준마이 다이긴조가 가장 높은 등급의 사케라고 보면 된다.

사케의 알코올 도수는 보통 13~17도 정도이다. 그러나 사케를 고르는 기준은 알코올 도수 보다는 산도(酸度)와 특유의 일본 주도(酒度)다. 병 뒤쪽 라벨에 표시되는 산도는 산뜻함의 척도라고 볼 수 있는데 클수록 약간 신맛이 난다. 주도는 +로 갈수록 드라이한 맛이 강하고, -로 내려갈수록 단맛이 강하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곡주 특유의 감칠맛과 산뜻한 향이 강점인 사케는 일본 내에서만 수천 종이 있다고 할만큼 다양한 종류와 이용법을 자랑한다. 우선 식전주로 쓰이는 스파클링 사케가 있다. 샴페인처럼 전채요리를 먹기 전에 가볍게 즐기는 술로 지난해부터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는 다마고 사케가 제격이다. 잔으로 내는 다마고 사케는 사케에 계란 노른자와 설탕을 섞어서 따끈하게 데운 것이다. 국내서 사케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히레사케는 사케에다 구운 복어 지느러미를 넣어 뜨겁게 데운 것으로 역시 지치거나 피곤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식후 디저트용으로 개발된 사케도 나온다.

가격대는 한병(보통 720ml)에 80만원짜리 초특가부터 시중 음식점에서 6만원이면 살 수 있는 대중적인 제품까지 나온다. 시중 대부분의 사케바는 하우스사케를 내놓고 잔술로도 판매한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 "사케 너무 데우면 향 날아가요"

“한국분들은 무조건 ‘뜨겁게 해 줘’ 하세요. 혀가 델 정도로 뜨거워야 좋다는 거에요. 그런데 좋은 사케라도 뜨겁게 마시면 안 좋아져요.”

일본 직수입 사케만 120여종으로 국내 최다 컬렉션을 자랑하는 롯데호텔 일식당 모모야마의 사케 전문가 이미향(일식당 모모야마 캡틴)씨는 사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사케에 대한 오해는 여전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케는 특유의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술로 뜨겁게 데우면 향이 날라간다.

히레사케나 다마고사케처럼 따끈하게 데워서 마시는 술이라 해도 적당한 온도는 사람의 체온, 즉 35~40도 정도.

고급 사케일수록 시원하게 해서 마셔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다이긴조 급의 사케는 섭씨 약 5도로 차게 해서 내놓아야 맛과 향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

아무리 고급 일식당이라도 히레사케나 다마고사케는 값싼 하우스사케로 만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씨는 “사케는 곡주 특유의 향과 맑고 깨끗한 맛을 입과 눈, 코로 음미하는 술”이라며 “식사 자리가 길어져 여러 가지의 사케를 마시게 될 경우는 주도가 낮은 것부터 시작해 높은 것으로 맺음하는 것이 각각의 사케 맛을 최대한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이씨는 일본 현지 일본술명문주회가 주관하는 사케 전문가 교육을 받고 최근 귀국했다.

■ 이미향씨 추천 사케& 찰떡궁합 음식

▲ 고쿄 네네 핫포 준마이

식전주로 개발된 스파클링 사케. 여성들을 중심으로 샴페인 대용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입안에서 기포가 부드럽게 터지는 맛이 사랑스럽다. 알코올 도수 5.9, 일본 주도 -9. 간단한 과일을 곁들여도 좋고 사케만 마셔도 그만이다.

▲핫카이산 다이긴조

일본 지명도 1위 브랜드의 최고급 사케. 잡미 하나 없이 깔끔한 맛과 부드러운 목넘김이 좋다. 알코올 도수 15.5, 일본 주도+5 . 은은한 향을 갖고 있어 섬세한 미각을 다투어야 하는 사시미나 스시 요리에 잘 어울린다.

▲와카다케 오니고로시 도꾸베쯔 준마이겐슈

한국 사람들 입맛에 특히 잘 맞는다는 평을 받는다. 겐슈(原酒)는 사케 발효 후 물을 섞지 않은 원주 그대로를 말하는 것으로 일반 사케보다 누룩의 향이 진하다. 알코올 도수 17.9, 주도 +7. 튀김 요리와 함께 하면 기름기를 개운하게 헹궈준다.

▲오야마 스기노카보조 도쿠베쯔 준마이타로

삼나무 통에서 발효시켜 은은한 삼나무 향이 우러나는 향긋한 술. 삼나무 향이 시원한 느낌을 더해주기 때문에 고기나 구이 처럼 다소 진한 맛의 음식을 잘 보완해준다. 알코올 도수 15~15.9, 일본 주도 +5.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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