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열린 국회 재경위의 한국은행 국정 감사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는 ‘주식회사 한국은행’의 만성 적자 문제였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최근 4년간 지속된 적자의 누적 규모는 5조원 가량. 흑자 때 쌓아두었던 적립금도 이제 곧 바닥날 조짐이다. 의원들은 “이르면 내년에 빈 곳간을 채우기 위해 ‘혈세’가 동원돼야 할 판”이라며 적자의 원인과 해소 대책을 집중 따져 물었다.
2003년까지 9년 연속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던 한국은행은 2004년 소폭 적자(1,502억원)로 돌아선 이후 매년 큰 폭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올해도 예산 기준으로 1조2,310억원의 적자가 예상돼 최근 4년간 누적적자가 5조원에 달한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스스로 4년 연속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논의할 자격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2003년말 6조원에 육박했던 한국은행의 적립금 잔액은 작년 말 2조원 아래(1조9,973억원)로 뚝 떨어졌다. 적립금을 털어서 적자를 메웠기 때문이다. 내년쯤이면 적립금 고갈이 예상된다.
적립금이 펑크나면 재정에서 메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무자본특수법인인 한국은행이야 설령 적자가 누적되고 적립금이 고갈된다해도 파산ㆍ부도 같은 문제는 없지만, 중앙은행의 공신력 면에서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적자이유는 매년 급증하는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 이자 부담이다. 환율급락을 막기 위해 원화를 풀어 달러화를 흡수(시장개입)하고, 이렇게 늘어난 원화(유동성)를 다시 환수하기 위해 통안증권 발행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2001년 79조1,000억원이던 통안증권 발행잔액은 9월말 현재 151조2,700억원으로 늘어났다.
작년 한 해 이자 부담이 6조8,000억원에 달한 데 이어, 올해는 7조5,000억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안증권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통안증권을 발행해야 하는,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뾰족한 해법은 없었다. 시장개입을 안 할 수도 없고, 유동성 흡수를 포기할 수도 없다. 대통합민주신당 채수찬 의원은 “통안증권을 국가채무로 전환하는 것이 어떠냐”고 지적했지만, 이성태 한은 총재는 “금리 환율 변동에 따른 부담을 정부가 지게 되는 셈”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대신 이 총재는 현재 이익이 날 때 10%만 적립하고 나머지는 정부에 세입으로 납부하는 것과 관련, “이익금 처분과 관련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의원들은 만성적자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복리후생 등 방만한 경영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추궁했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4년 적자에도 불구하고 매년 인건비가 10% 증가하고 있다”며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복리후생비는 2002년 63억원에서 작년 99억원으로 58%나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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