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건설업자와 유착한 비리혐의로 구속됐다. 정씨가 부산의 건설업자 김상진씨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주선한 사실을 그냥 넘긴 검찰이 여론에 떼밀려 재수사한 지 48일 만이다.
검찰은 정씨가 로비주선 대가로 돈을 받고 범죄증거를 조작한 혐의를 밝혀냈다. 그러나 김씨가 거액의 특혜 대출보증을 받은 것 등에 정씨의 힘이 작용한 권력형 비리의혹의 몸통은 드러나지 않았다. 애초 몸을 사린 검찰은 그만큼 할 일이 많다.
정씨의 뒤늦은 구속은 이른바 '386 실세'의 언행이 위선에 찬 것을 드러냈다. 법원이 영장발부 사유에서 적시했듯 그는 범죄혐의가 무겁고 주변 인물의 공증진술서를 조작하는 증거인멸까지 꾀했다.
그런데도 자신의 구속을 '대단한 대한민국 검찰과 언론' 탓으로 돌려, 대통령을 빼닮은 듯한 언동을 한 것은 놀랍다. 검찰 출두 때 단정한 모습을 보인 것에 "혹시 무고한 이를 몰아붙이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한 것이 허망할 정도다.
물론 정씨가 후원금 명목으로 김씨에게서 수천만원을 받고, 자신의 형이 김씨 회사의 하도급을 받은 것 등이 로비를 도운 대가인지는 법원에서 다툴 수 있다.
그러나 김씨가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1억원 뇌물을 준 자리를 주선한 것을 예사롭게 보는 것은 애초 상식과 크게 어긋난다.
또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공적 기관이 위조 공사계약서에 속아 몇 십억원씩 대출 보증을 해준 배경에 국무총리 민정비서관 등으로 있던 정씨의 힘이 작용한 것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다. 김씨가 관급공사와 재개발사업을 쉽게 따낸 것도 지방 '건설족' 토호의 위세 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통령 측근 비리를 곧장 권력의 '게이트'로 규정하는 것은 불합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레 "깜이 안 된다"고 비웃은 것은 이 사건이 변양균 사건과 함께 그나마 남은 정권의 도덕성과 정체성을 한꺼번에 허문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애써 부정한 것이다. 그 과오와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려면 국민에게 진솔한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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